살면서 우리는 누구에게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할까. 이 질문 앞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다. 중국계 미국인 영화감독 룰루 왕의 〈페어웰〉이라는 작품이다. 영화 속 ‘빌리’는 오늘도 수화기 너머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한다. 월세가 밀려 한숨을 쉬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잘 지내냐는 말에 애써 잘 지낸다고 말하고, 코에 피어싱까지 했음에도 뉴욕에선 귀걸이도 잡아당겨 훔쳐...
- 대지의 메아리: 살아있는 아카이브 -장소 푸투라 서울(서울 종로구 북촌로 61)관람료 22,000전시기간 12월 8일까지 ㅡ 이토록 지독한 적이 있었을까? 물러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길고 더운 올여름을 보내며 심하게 훼손되는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이 모든 이상기후 현상은 인간의 편리함만을 위해 만들어 낸 기술과 기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 기계는 영...
11월의 페어링 감홍로 + 코다리 조림 감홍로(甘紅露)는 ‘달고 붉은 이슬’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이슬, 로’는 임금에게 진상하는 술에만 사용할 수 있는 글자였다고 하니 이름에서부터 술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이강주, 죽력고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히는 감홍로의 존재감은 고대 소설 속에서도 두드러집니다. 별주부전에서 자라가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가려고 꼬실 때 들먹이는 술이기도 하고, ...
친구들과 탁구를 치다 보면 공 말고도 다른 것이 보인다. 나와 마주선 상대 혹은 나와 한 팀인 친구의 성격이나 습관 같은 것이다. 어떤 친구는 여유롭고, 어떤 친구는 긴장한다. 어떤 친구는 이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어떤 친구는 자신이 승부사 스타일인 것 같다며 자신만만해한다. 어떤 친구는 어제 배운 서브를 해볼지 말지 망설이고, 어떤 친구는 뭘 그런 걸 연습하냐고 ...
계절은 지루한 듯 부지런히 흘러간다. 추분이 지나자 기세등등하던 여름볕이 스러진 사이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파고들었다. 이윽고 하루가 다르게 동글동글 달이 차오르더니 가장 빛나는 가을밤이 찾아왔다. 추석이었다. 객지로 떠난 자식도 돌아와 풍성한 식탁을 나누는 기쁜 날이건만 나는 멀어도 너무 먼 객지라 부모님께 얼굴을 보이지 못하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미국 밤하늘에도 어김...
삶은 강처럼 흐른다. 비가 오면 수위가 높아지고, 태풍이 불면 물살이 거세지고, 노을이 지면 노란 해를 띄운 채 변함없이 흐른다. 삶의 유속도 강의 흐름과 비슷하다. 가까이에선 속도감이 잘 느껴지지 않지만 잠시 힘을 빼고 고개를 들어보면 주변 풍경이 달라져 있다. 어느덧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거울 속 내 모습은 내가 알던 얼굴과 다르다. 부모님도 뵐 때마다 할머니, 할...
유튜브에서 교양 지식 채널 ‘밍찌채널’을 운영하는 차민진 씨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궁금증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즉각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녀의 지식 탐구가 가치 있는 이유는 현대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유익한 매개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양 유튜버 차 민 진유튜버 차민진(29) 씨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문득문득 영화 주제곡 하나...
-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 ‘전철 안 에어컨 바람도 땀을 식혀주지 못하던 오후/ 옆자리가 나자 멀찍이 서있던 할머니가 급히 걸어왔다/ 툭. 내 발을 건드리고 앉았다/ 구겨진 미간이 채 펴지기도 전에 다시 툭/ 할머니가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손이/ 자꾸 미끄러져 내 다리를 건드렸다/ 앞에 선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미끄러지는 손을 꼭 붙잡았다/ 조몰락 조몰락/ 덥지도 않은지 두...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 씨에게 히라야마 씨, 당신은 매일의 루틴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지요. 눈을 뜨자마자 식물들의 안위를 살피고, 차례차례 양치와 면도를 하고,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작은 봉고에 오릅니다. 당신은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을 합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누군가는 당신의 일을 폄훼하기도 해요. 당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 다카시는 말...
목소리만으로도 한 부모 아래서 자란 형제임이 대번에 드러나는 이들이 있다. 오늘 숍을 방문한 두 명의 중년 여성이 그랬다. 그녀들은 같은 동네에 살며 한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퇴근하고 언니로 보이는 이가 동생을 억지로 마사지 가게에 데려왔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언니 쪽은 활기차며 에너지가 넘쳤다. 반면 여동생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동생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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