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al azalea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건조기로 옮기는 내게 얼마 전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뭐 했다고 벌써 겨울이야? 허무하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아쉬워하는 아들에게 나는 “그렇지? 엄마는 그 기분이 너무 싫어서 매일매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라고 말해주었다. 겨울이 깊어가면 허무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다. 1년간 바쁘게 열...
바닷가 코앞에 자리해 집 안 어디서든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집, 바다와 한 몸인 듯한 ‘삼대한채’에서 쌓은 추억은 바다에 고이 간직된다. 그 추억이 물결쳐 우리는 바다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덕수궁 돈덕전과 석조전 덕수궁의 깊은 구역에 새로운 궁궐이 문을 열었다. 돌담길 뒤쪽에서 보면 불쑥 솟아나온 원뿔형 지붕을 가진 붉은 벽돌 건축물이 있어 내내 궁금증을 자아내던 터였다. 덕수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양관이 많다. 화강석으로 매만진 석조전과 미술관 외에도 국왕이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이 있고, 덕수궁 담 너머에는 중명전이 자리한다. 을사늑약이 ...
빅 피쉬의 윌에게 윌, 당신은 사람을 볼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가요? 제 경우에는 가장 먼저 눈빛을 살펴요. 눈이 맑은지 탁한지, 밖을 향해 있는지 안을 향해 있는지 같은 거요. 눈을 유심히 바라보면 이 사람은 나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구나, 이 사람은 수줍음이 많구나 알아챌 수 있잖아요. 그러고 보면 눈은 참 신기해요. 인간의 신체 부위 중 유일하게 덮개가 있다는 ...
어머니, 옥체 두루 평안하신가요? 아침저녁으로 참치 반찬은 잡수시는지, 식간에 맛있는 간식은 넉넉히 드시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불효막심하게도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추적추적 비 내리는 늦가을, 어머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기억하는 것만 그리워하나요? 이제 가을도 끝나갑니다. 나무들이 몸에 지...
어느 날 첫째 아이가 지금부터 자기는 파란색 옷만 입을 거라고 선전포고했다. 그건 분명한 선전포고였다. 마치 사극 드라마 속 장수가 적진을 향해 포효하듯 대사를 뱉어냈는데 그 기세가 너무 대단해 단호한 결기마저 느껴졌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당황했지만 본디 외교라는 것은 일방의 입장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일단 침착하게 접근해 의도를 파악하기로 했...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다. 어른이 되어 도서구입비를 무제한으로 지원해주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책을 마음껏 사볼 수 있는 환경에 놓여 독서의 즐거움을 깊이 누릴수록 느끼는 감정은 대개 후회였다.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을 걸. 유튜브나 SNS의 유혹이 없던 그 시절에 독서를 많이 해둘걸.’ 늦었지만 지금이라...
‘진정한 집은 살고 있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고들 한다. 육아 6년 차 일본인 아빠 미노리 씨는 가족들과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정겨운 고향이 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네 어귀에 들어서 골목길에 쌓인 흰 눈을 밟다 보면 간절히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 하나쯤 생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보통 군고구마나 붕어빵이겠지만 일...
수많은 예술가 중에는 부모나 조부모가 유명해 이득을 본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아티스트는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엄마가 유명해 이득도 보았고 손해도 본 이 아티스트는 역사상 최고의 컬렉터로 인정받은 페기 구겐하임과 첫 번째 남편 로렌스 베일의 딸, 페긴 베일 구겐하임(1925-1967)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익살맞고 ...
인생은 먹지 않고선 지속시킬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네 음식에는 삶의 이야기가 끈적끈적하게 붙어있다. 나는 피자를 먹을 때 난생처음 이탈리아 현지에서 피자를 한 입 베어물었을 당시의 감동을 떠올리고, 호박죽을 먹을 때면 꽉 찬 속을 긁고 찹쌀을 불려 노란 호박죽을 끓여줬던 어머니의 수고를 생각한다. 그리고 노릇하게 튀겨진 치킨을 보면 언제나 아버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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