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감옥에 가겠어.” 왼쪽 아래 어금니가 욱신거린다는 나의 하소연에 친구는 마치 자신의 고통인 양 괴로워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치과란 얼마나 대단한 곳인가.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게 하지 않는가.’ 치과란 정말 끔찍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왱’과 ‘잉’ 중간쯤인 소리로 돌아가는 드릴 소리, 이가 갈리며 나는 탄내, 소스라치게 만드는 예리한...
〈말없는 소녀〉의 코오트에게 코오트, 저는 요 며칠 《사랑의 방》이라는 사진집을 수시로 펼쳐보고 있어요. 불 타는 방, 겨울의 방, 바닷가의 방, 죽은 사랑의 방, 사랑의 바깥 방 등등 방 연작을 모아놓은 프랑스의 사진작가 베르나르 포콩의 사진집이에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방의 풍경과 색감, 온도와 질감이 달라지는데 이 장면들은 제게 너무나 많은 말을 걸어온답니다...
운현궁1933년 봄, 조선일보에 김동인의 새 소설 《운현궁의 봄》이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 소설의 주인공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지나간 시대의 인물이었다. 이때 운현궁(雲峴宮)의 주인은 이하응의 증손인 이우 공이었고, 한창 젊고 아름다운 그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으로 떠난 뒤 안주인들이 지키던 운현궁은 이우 공이 돌아와 머무...
예술이 문밖으로 나오면 어떤 모습일까.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가 꼭 비싼 값을 치러야 관람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할까. 모두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일 순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때면, 일본의 나오시마 섬을 떠올린다. 나오시마를 비롯한 12개의 섬에서 열리는 예술 축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서 나는 섬 곳곳에 흩뿌려진 작품 사이를 거닐고 미술관...
어렸을 적, 나는 친구가 없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친구가 없었다. 반마다 꼭 한 명씩 있는, 쉬는 시간마다 자기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앉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조용한 아이. 급식은 항상 혼자 후다닥 먹어 치우고 어쩌다 누가 말을 걸면 눈부터 피하는 아이. 나는 그런 아이인 채로 초등학교 6년을 보냈다. 그런 시...
“흘러가는 구름에 마음을 실어 보내기도 하고, 밤하늘과 별이나 달빛에 흐려진 눈을 씻기도 해야 할 것이다. 생명이 없는 박제된 현대의 도시 문명, 그 오염을 씻어내려면 자연의 손결밖에 없다.” - 법정 스님 《산방한방》 중 - 방금 잔디마당 풀을 솎아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 가 는 줄 모르고 집중했다. 아마 날만 밝았더라면 정원에서...
“요즘엔 성숙한 사랑에 노력이 필요하단 것을 느껴. 그런데 말이야, 사랑을 발전시키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한데 사랑에 빠지는 순간만큼은 노력으로 안 되는 것 같아.” 얼마 전에 친구가 한 이야기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어떤 것에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연한 기회로, 단순한 호기심으로, 기분 좋은 첫 만남으로 애정의 늪에 순식간...
사람은 대체로 태어나길 약하게 태어난 곳이 자꾸 아프다. 아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기침을 했다. 놀이터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실컷 논 저녁, 바람이 좀 차다 싶으면 여지없이 콜록콜록 소리가 들렸다. 어느 해는 겨울 내내 기침을 했다. 동네 소아과부터 대학병원, 한의원까지 다 가보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었다. 팔삭둥이로 태어나 호흡기가 천성적으로 약...
경상남도 통영은 400여 년의 역사를 품은 문화도시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과 음악가들을 길러낸 예술의 맥이 유유히 흐르는 한옥 한 채가 다행히 아직 남아있다.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절사의 서쪽 부근, 명정골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잊음’은 구한말 통영 4대 부자로 불리던 양반집이었다. 현재 통영 사람들에겐 ‘하동집’ 혹은 ‘박부자댁’으로 통하는 이곳에...
지난 주말,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왜 결혼식은 볼 때마다 청승맞게 눈물이 나는 걸까.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신랑에게 건네줄 땐 예상된 시나리오임에도 늘 콧등이 시큰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 그림이 떠올랐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의 가장 유명한 그림은 황소 시리즈이다. 하지만 난 〈돌아오지 않는 강〉을 유독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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