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좋아한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리바이스 데님을 좋아한다. 이보다 더 명확하게 짚자면 리바이스의 빈티지 데님을 사랑한다. 데님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낡음을 지닌 빈티지 제품에 대한 애정이 크다. 니트의 경우에는 보풀이 잔뜩 일기도 하고, 티셔츠는 면이 닳고 닳아 속살이 비치고 곳곳에 구멍이 나 있기도 하다. 어떤 이가 오랫동안 열심히 입고 생활한 옷...
나, 당주. 계절이 바뀐 것을 온몸으로 알 수 있지. 창문 앞에서 코를 벌름거리다 보면 바람에 실려 오는 다양한 냄새를 감지할 수 있거든. 냄새는 날마다 조금씩 바뀌지. 여름화단에서 부는 바람은 더운 흙냄새를 풍기고, 가을화단에서 부는 바람은 차고 건조한 나뭇잎 냄새를 풍겨. 오늘 아침엔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새소리가 들리더라? 귀가 따갑도록 울던 매미 소리...
토끼 같은 두 딸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주방을 떠나지 않는 박호근 씨는 건강한 음식을 추구한다. 신선한 재료와 오차 없는 레시피로 맛있는 한 끼가 완성되면 참으로 흐뭇하지만 가족과 둘러앉아 애정을 나누며 먹는 식사 시간에 가장 포근한 안락함을 느낀다.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가졌을 법한 의문이 있다. ‘요리 전문가가 하라는 대로 만들었는데 ...
군인 아버지를 둔 나는 어릴 적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래서 여러 지역의 학교에서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생활이 힘든 아이들이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나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먼저 선뜻 다가갔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이런 내 행동들은 오만이었다. 순전히 착한 아이가 되고 싶은 소망에서 비롯됐으니, 결국 나 자신을...
후덥지근한 더위가 찾아오면, 엄마는 방학을 맞이해 집 주변에 있는 외할머니댁 마당에 간이 수영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말마다 그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수영복을 챙기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잔뜩 설레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 내 곁에는 언제나 천진난만한 동생들이 함께였는데, 우리는 물총을 가지고 서로에게 물줄기를 마구 쏘거나 종아리도 ...
상처는 회복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에겐 상처가 단단히 아물어 새 힘이 생기도록 도와주는 치유자들이 있다. 이름 권신영(49) 직업 강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전 호스피스 간호사 Q. 호스피스 간호사가 된 계기 제가 처음 입사한 암 병동은 임종의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곳이었어요. 생명이 꺼져가는...
‘알려드리는 것이 맞을지 고민하다가 부고를 전합니다.’ 갑작스러운 문자에 놀랐다. ‘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런데 연락하신 분은 누구신지요?’ 문자를 보낸 사람은 고인의 아내였다. 고인은 내 학교 후배인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그의 사망 원인은 뇌졸중이었다. 그간 쌓인 학교 업무와 논문을 소화하느라 올해 쉰 살인 몸이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고인과는 동창회 온라인...
봄이 가까워지면 한참 전부터 기다리곤 한다. 봄을 타거나 유독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고 봄이 오면 ‘꽃을 보는 사람들’을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사라는 직업상 캠퍼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다. 학교에는 엄청난 수의 벚나무들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만개한 꽃을 보려고 캠퍼스를 찾는 걸 가까이서 보고는 한다. 그렇게 흥성거리는 풍경을 참 좋아한다....
“봉사님, 일주일 동안 잘 계셨어요?” 여인이 다소곳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챙이 큰 모자에 선글라스, 한여름인데도 스카프를 목에 감고 있고, 옷은 얇은 긴 팔 긴 바지 차림이다. 어깨에는 보스턴백을 메고 있다. 그녀는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내게 안마를 받는 고객이다. 올해 84세로 양쪽 귀에 보청기를 끼는 것 외에 큰 질병은 없다. 꾸준히 체형 관리를 해서 자세가...
도배사 배윤슬 씨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다. 명문대를 나온 학벌도, 많은 청년이 목표하는 대기업 입사도 제쳐두고 건설 현장 일용직을 직업으로 택했다. MZ세대답게 해당 직업을 바라보는 본인만의 시각과 주관이 남다르다. 배윤슬 마침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 가을의 문턱에 무사히 도착한 모두와 자축 파티라도 열고 싶은 기분이다. 지난 무더위가 어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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