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의 료타 씨에게 료타 씨,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빨래 중독자라 칭할 만큼 빨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길고 긴 여름 장마가 야속하기만 해요. 창가에 널어놓은 옷들이 여름 햇볕에 빳빳하게 말라가는 장면을 볼 때 제 안의 미움도 걷히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데 우중이라면 다 소용없는 일이지요. 물 먹은 솜처럼 마음이 퉁퉁 붓고 무거워지는 ...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책방 ‘페잇퍼’에 간다. 연희104고지 버스정류장에 내려 북적거리는 도롯가를 걷다가 골목에 들어서면 소음이 서서히 작아진다. 연희동 골목만이 가진 특유의 격을 느끼게 하는 카페와 옷가게, 공방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Paperr’라는 간판이 나타난다. 바로 들어갈 수는 없다. 모바일로 가입 절차를...
그 소리를 통해서 마음에 평온이 오고 마음이 맑아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리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곧 자기 내면의 통로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착안해야 한다. - 법정 스님 《버리고 떠나기》 중 - 장맛비의 예고인가. 마치 공연 전의 예비 조율처럼, 며칠 전부터 한두 차례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였다. 산중의 정적 속...
미국으로 이주하고 2년 뒤, 꿈에 그려왔던 첫 집을 샀다. 그리 크진 않지만 앞뒤 마당이 아담한 단독 주택이었다. 이사 후엔 바로 정원 공사를 시작했다. 온갖 잡목과 식물을 다 걷어내고 잔디를 새로 깔았다. 잔디 위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모습을 늘 꿈꿔왔기에 정원을 꾸미는 내내 마음이 설렜다. 그러나 잔디 위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을 느낀 건 ...
창덕궁 희정당 운이 좋았다. 요즘 궁궐에 무슨 일이 있나 검색해 보다가 희정당 행사 소식을 들었다. 닫힌 왕의 공간을 직접 들어가서 경험해보는 ‘희정당 깊이 보기’ 프로그램이었다. 소식 빠른 사람들로 인해 이미 전 회차 매진이었지만, 혹시나 하여 빈자리를 찾아보았다. 마침 딱 한 자리가 남아있었으니, 어떤 사정으로 취소했을 그 누군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과거의 아픔을 보듬고 새로운 시간으로 나아가는 도시, 목포. 가난의 슬픔이 깃들었던 자리에 하나둘 예쁜 보금자리들이 들어서는 항구를 두고 ‘목포의 눈물’ 대신 이젠 ‘목포의 낭만’을 떠올리게 된다. 먹구름을 이고 유달산(儒達山) 중턱의 유선각에 올라서자 그제야 목포가 항구 도시임이 실감 났다. 보슬비에 실려 풍겨오는 바다 내음과 다닥다닥 붙은 옛집들, 망망한 남해...
어깨에 멘 가방이 자꾸 흘러내려 왼손으로 연신 가방을 치켜올리며 걸었다. 시선은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있었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자꾸 몸에 부딪혔다. 그때마다 내 몸은 비틀거리며 궤도를 이탈해 보도 밖으로 튕겨나갔다.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금요일 저녁의 신촌 로터리였다. 띠리리리. 오락실 기계에서 〈엘리제를 위하여〉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지직, 지직. ...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양말 벗기다. 발이 답답한 것은 딱 질색이어서 여름엔 양말을 신지 않아도 되는 슬리퍼나 샌들을 자주 신는다. 발에 무언가를 덧대는 것을 힘들어하는 내게 얼마 전 집에서 신는 슬리퍼가 생겼다. ‘쉐누아파리’의 패브릭 룸슈즈! 다채로운 패브릭으로 제품을 만드는 쉐누아파리는 내가 잠옷과 침구류를 자주 구매하는 브랜드이다. ...
사람들은 흔히 밀레를 ‘농민화가’라고 부른다. 노르망디 태생인 밀레는 1849년 콜레라 전염을 피해 파리 남쪽의 농촌인 바르비종에 정착했다. 그곳에 화실을 차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바르비종파’로 활동하면서 마을 농민들의 모습을 꾸준히 관찰해 화폭에 담았다. 밀레가 그린 농민들은 전부 오랜 시간 이어진 고된 일로 인해 투박한 손과 지친 표정을 하고 있다...
빨간 머리에 짤막한 몸을 가진 물건. 이렇게 설명하면 다들 무얼 떠올릴까. 나라면 바로 성냥이라고 답하겠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 집에 있는 팔각형 모양의 큰 성냥갑을 좋아했다. 마당 한 구석에 앉아서 성냥갑을 흔들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좋아서 한참을 그렇게 흔들어댔다. 해가 져 사위가 어두워지면 신문지나 전단지를 모아놓고 나만의 작은 ...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