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고양이라 부르는 우리는 직관에 의존하고, 현재를 살며, 기분을 가꾸는 데 가치를 두지. 뭐가 이렇게 거창하냐고? 나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데 들을 때마다 억울하거든. “얘는 종일 잠만 자네. 하는 일 없이 뒹굴뒹굴, 이 게으름뱅이.” 게으름뱅이라니!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일과를 수행하다 잠시 눈을 감고 쉬는 중에 이런 말을 들어 봐....
나는 손아귀에 쏙 들어갈 만큼 자그맣고 아담한 그릇을 가지고 있다. 지름 6.5㎝, 높이 3.5㎝. 사람들은 이 작은 그릇을 종지라 부른다. 소꿉장난 하는 애들이 가지고 놀기에 딱 좋은 크기이고, 그릇이라 부르기엔 마땅찮아 종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이 작은 종지는 명정월색(明淨月色)에 비친 처녀의 얼굴처럼 희고 고왔다. 제사상에 올리려고 정성 들여...
길을 걷다가 맞이한 소나기가 온몸을 적시는 장맛비로 번져가는 걸 보니 정말 계절의 이름표가 바뀔 때가 됐나 보다. 나는 여름날에 벌어지는 모든 우연을 기대하기에, 올해 여름도 운 좋은 날의 연속이길 바라고 있다. 여름마다 한 번씩 보기로 다짐한 영화가 있다. 《허니와 클로버》인데 내가 걸음마를 떼고 있을 무렵에 개봉한 영화다. 이번 여름에도 장마가 깊어질 때쯤...
휴식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많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기기들이 그 불명예를 안기 쉽다. 지나친 기기 사용으로 피로감이 쌓였다면, 일상에서 디지털기기와 이별의 시간을 갖는 이들이 경험한 변화에 주목해보자. 이름 정주연(31) 직업 디지털디톡스 모임 ‘단하루’ 대표 Q. 모임에서 디지털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하는 일 스마트폰뿐 아니...
한국인의 입장에서 프랑스 출신 방송인 파비앙을 보면 꼭 하고 싶은 인사가 생긴다. ‘내 나라를 진심으로 좋아해줘서 고맙다’는 말이다. 최근 한국역사 해설사로 거듭난 그의 모습에서 한국을 향한 보다 깊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파비앙 서울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서촌의 가옥들은 대부분 1920년대 이후에 지어진 생활형 개량한옥이다. 70년 된 단층 한옥을 개조한 촬...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여행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실은 좋아하지만 여행을 좀 힘들어할 뿐이다. 예민한 체질과 약한 체력 때문이겠는데, 여행에서 아픈 경우가 많았다.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두 번 있고 구급차를 탄 적도 있다. 제주도 구좌읍의 햇당근 주스를 마시고는 급성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온몸이 빨개지며 쓰러졌다. 위경련은 하도 자주 나서 아예 약을 준비해간다. ...
바닷물에 반사된 여름 햇살이 눈을 찌른다. 시장통 장돌뱅이 아이들은 어선 주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배에 오른다. 여섯 살인 나도 따라 오른다.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에 짐짓 비장함이 스친다. 조금 전 물속에 뛰어든 동네 오빠가 둥근 삼각형의 배 밑바닥을 타 넘고 반대편으로 헤엄쳐 나온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 나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마음이 ‘할 수 있다’고 스...
울산에서 야외촬영이 끝난 건 오후 네 시 무렵이었다. 수고하셨다는 인사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출연자는 한참이나 인상을 쓰고 있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피할 그늘 하나 없는 한여름의 야외촬영은 언제나 모두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그날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약속했던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다. 예정보다 겨우 두어 시간이 늦었을 뿐...
특집_그리운, 가요비 오는 날듣기 좋은 노래 서울 성수동에 새로 생긴 한 LP카페는 커다란 통창이 바깥 풍경을 아낌없이 들여보내는 곳이다. 쨍한 햇빛을 받아 채도가 높아진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레코드판 하나를 걸었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의 2집이었다. 15년이 지나도록 ‘인생 발라드’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을 풍성한 LP 음색으로 듣는 호사를 누리며 생각했다. 역시 나얼은 화창한 햇빛 아래에서도 빗소리를 회상하게 만드는 타고난 감성의 소유자란 것을. 비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바람의 감촉이 느껴진다. 옅은 물비린내를 풍기며 가볍게 부는 순한 바람. 그 시원하고 축축한 촉감으로 나는 여름이란 계절을 감각한다. 호소력 짙으면서도 청량감이 묻어나는 나얼의 목소리는 비 오...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하늘도 이별을 우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네.” 가수 김창완의 노래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그대 떠나는 날에 하늘도 슬퍼서 우는데 나는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하니 더욱 슬퍼진다. 어떤 이별이 슬프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 이유를 슬픔이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두고두고 겪을 일이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이 노래가 나는 참 좋다. 요즘은 비를 맞지 않으려고 꼭 우산을 쓰고 다니지만 어렸을 때는 비가 반가운 손님이었다. 굵은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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