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공간 과몰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두운 언덕길에 쏟아지던 노랗고 따스한 빛이다. 작년 봄, 나는 친구 권누리 시인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첫 책을 출간한 기념으로 혜화역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산책했다. 우리는 첫 책이 나왔다는 엄청난 사실에 압도돼서 계속해서 책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사실 나만 흥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누리는 나보다 훨씬 의연...
어디갔어, 버나뎃의 버나뎃 씨에게 지난 연휴에는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속초의 한 서점에서 북토크를 마련해주신 덕분에요. 황금연휴와 맞물린 터라 교통편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다행히 증편된 버스가 있더라고요. 서울에서 속초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여섯 시간. 막힐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마저도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 국도로 돌아왔는데 말이지요. 주...
풀 내음 짙게 풍기는 섬진강을 따라 걷다 보면 마음의 생기를 되찾게 된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경남 하동에서 산소처럼 맑은 기운을 몸속 가득 담아왔다. 공휴일 이른 아침, 시원한 물소리와 산뜻한 아침 공기에 잠을 깼을 때, 비로소 경남 하동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자연이 건네는 싱그러운 아침 인사를 받으며 서둘러 여행길에 나섰다. 공복의 가벼...
어머니 댁 장롱 속 여러 앨범 중 내 몫은 자주색 비로드 천으로 된 것이다. 그 안에는 내 영유아 시절부터 중학생 때까지 망라되어 있다. 제법 두툼하다 해도, 한 시간이면 꼼꼼히 살펴보고도 남을 앨범을 매번 들여다보는 일이 지겨울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어쩜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는지, 모든 크고 작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이나 문자의 위대함을 절감하곤 하...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시인인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1886-1980)는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세기말 오스트리아 빈의 벨에포크 시대를 이끈 인물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사모했던 알마 쉰들러(Almz Schindler, 1879-1964)는 외모도 아름다웠지만 화가인 아버지 에밀 쉰들러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예술적...
그리운, 가요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 서울 성수동에 새로 생긴 한 LP카페는 커다란 통창이 바깥 풍경을 아낌없이 들여보내는 곳이다. 쨍한 햇빛을 받아 채도가 높아진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레코드판 하나를 걸었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의 2집이었다. 15년이 지나도록 ‘인생 발라드’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을 풍성한 LP 음색으로 듣는 호사를 누리며 생각했다. 역시 나얼은 화창한 햇빛 아래에서도 빗소리를 회상하게 만드는 타고난 감성의 소유자란 것을. 비 내리는 풍경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바람의 감촉이 느껴진다. 옅은 물비린내를 풍기며 가볍게 부는 순한 바람. 그 시원하고 축축한 촉감으로 나는 여름이란 계절을 감각한다. 호소력 짙으면서도 청량감이 ...
오직 비 오는 날을 위해 기발한 물건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비가 좋아서, 어떤 이는 비가 싫어서 개발했지만 사용자는 틀림없이 비가 더 좋아지게 된다. 올여름에는 장마철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우중 아이템 개발자들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이름 이은혜(44) 직업 조향사 (향수브랜드 ‘유어브리즈’) 개발품 비 오는 날 첫사랑의 추...
◦파랑새의 희망수기◦ 저마다 가슴속에 품은 씨앗 하나로 한 편의 글을 틔운다면 우리의 세상이 더없이 풍요로워질 거라 믿습니다. ‘파랑새의 희망수기’는 2023년 샘터상 생활수필 부문에서 최종심에 올랐던 원고를 필자의 동의 아래 소개합니다. 여름날의 촌은 어느 곳보다 낭만적이다. 먼 곳을 바라보면 산이 있고 가까운 곳을 바라보면 논이 있다. 회색 시멘트로 덮인 울퉁...
고양이들은 감각에 의해 움직인다. 수상한 일이 있다고 느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귀를 세우고 동공을 확장하고 털을 세운다. 고양이에게 예감은 두 발짝 일찍 온다. 예감을 예감한다고나 할까? 내 짧은 생애에 난감한 일이라면 적지 않게 겪었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아,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다. 이 집에 나 아닌 고양이가 들...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의도를 가지고 구현해 놓은 공간을 바꾸는 일은 빈 땅에 새로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세심함을 요한다. 자칫 단점을 고치려다 장점마저 희미해질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월악산과 충주호 사이, 1999년 건립되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충북 제천의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2021년 개·보수 공사 후 누구에게나 열린 숙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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