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로 몇 년 동안은 조용하고 차분한 연말을 보냈다. 나에게 원래 12월은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한 해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달이다. 지인들과 연말에 소소하게 티 파티를 한다. 티 파티라고 하면 화려하고 성대할 것 같지만 그저 오랜만에 모여 차를 마시며 한 해가 지나가는 아쉬움을 달래는 소박한 자리다. 대신에 티 파티를 할 땐 그날의 호스트가 계절과 티 파티...
“글이 안 써질 때, 작가님은 어떻게 하세요?” 8주 동안의 시민 대상 시(詩)창작 강의 마지막 날이었다. 지긋한 연세의 학생 한 분이 손을 들어 물었다. 아직 질의응답 시간도 아닌데 불쑥 끼어든 엉뚱한 질문에 와르르 웃음이 쏟아졌다. 덕분에 나도 웃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심각했다. 어쩐지 억울한 듯 보이기도 하고. 마지막 과제를 미처 제출하지 못한 것이 적잖이 못마땅하셨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주소 경기 파주시 문발로 253http://www.mimesisartmuseum.co.kr / 031-955-4100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로 하늘 길이 닫히기 직전까지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과 포트 와인의 산지인 포르투에서 여행 내내 알바루 시자의 건축을 볼 예정이었다. 포르투갈 파빌리온의 거...
결혼기념일인 4월 23일이란 날짜에 특별히 기념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그날에 파주 탄현이라는 동네에서 서점 ‘책방아지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지천명을 지난 나이. 마음과 다르게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네 식구가 월세방에 사는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꿈이있었다. 오래 전 결혼서약으로 다짐했던, 책방을 하기로 한 ...
김은률 씨에게 생선 비린내는 어릴 때부터 익숙하고 그립던 고향의 냄새다. 사시사철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강원도 고성 공현진항에서 김 씨는 지금도 매일 매일 비린내와 씨름하고 있다. 달라진 거라면 이제는 그 비릿한 고향의 냄새를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반려견 전문 수산물 간식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한 뒤로 비린내는 그에게 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향기가 되었다. 바닷가에 ...
첫 번째 편지 - 지상에서의 마지막 티타임 비오는 날, 혼자 카페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앞 테이블에서 갑작스러운 웃음소리가 이어폰을 통과해 들려왔다. 안 그래도 집중이 잘 되지 않던 차에 고개를 들어보니 내 어머니 또래의 여성 두 분이 ‘셀카’를 찍고 있었다. 나란히 앉은 두 분 중 한 분이 팔을 길게 뻗어 핸드폰의 촬영 버튼을 겨우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부동산사무실을 운영하던 10여 년 전, 가녀린 인상의 한 아가씨가 방을 구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찬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던 무렵이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권하며 나는 우선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을 물었다. 고객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은 부동산중개인의 업무 중 하나였다. 가령 이사할 날짜는 정해졌는지, 준비된 돈은 어느 정도인지, 가족 구성원은 어떤지 등을 알고 나면 ...
단독에 살면서 노래와 친해졌다. 맘대로 노래도 부르고, 음악도 크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가냘픈 구절초 꽃잎 위에 가을볕이 소복이 내리쬐는 가을날 오후, 벤치에 앉아 ‘피셔 디스카우’를 듣는다. 결혼 후 이삿짐을 싼 횟수를 따져 보니 일곱이다. 남들처럼 운 좋게 아파트에 당첨된 것도, 재테크 목적으로 이사한 것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많은 횟수에 스스로...
전통주소믈리에 김영우 씨는 호기심이 충만한 여행자처럼 산다. 한 번 맛본 전통주에 연이어 생기는 궁금증을 막을 길 없어 그 신비한 세계로 깊이깊이 들어왔다. 일터였던 전통주갤러리와 슬로푸드문화원을 뒤로 하고 얼마 전 프리랜서로 전향한 그는 각종 시음모임을 통해 여러 사람과 둘러앉아 살맛 가득 찬 술잔을 기울이는 중이다. 바야흐로 전통주 전성시대다. 유명가수 박재범이 출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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