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에는 반드시 카메오가 출연한다. 영화를 한층 돋보이게 해주는 카메오처럼, 요새 내 마음을 훔치는 공간들에는 ‘희녹’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산뜻한 편백나무의 향을 발산하는 편백수 탈취제 희녹을 접할 때마다 향기에 한 번, 표장용기에 두 번 반하곤 한다. 디자인과 기능이 모두 맘에 들어 이사하면 우리 집에 들여놓을 버킷리스트에 올려두곤 했다. 희녹의 박소희 ...
육아하기 싫은 날이 간혹 있다. 실은, 이 또한 거짓말이다. 어쩌다가 한 번씩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그런 감정이 든다. 일주일에 거의 한 번꼴로.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월요병이 있듯, 내게는 ‘수요병’ 또는 ‘목요병’이 생겼다. 육아에 평일과 주말 구분이 없다지만 그래도 한 주의 가운데에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수요일이나 목요일마다 고비가 한 번씩 온다. 하기 싫은 걸 자세히 ...
틈만 나면 집 근처 뒷산을 달린다.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면 코와 입과 폐로 가득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 나도 모르게 큰 숨이 쉬어지는 자연에 감사하게 된다. 집에서도 100여 개의 식물과 함께 살지만, 동네 뒷산의 공기에 비할 수는 없다. 흙 속 미생물들이, 땅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풀과 나무가 겹겹이 뿜어내는 풍부한 향기를 느끼려면 산으로 가야 한다. 소나무, 살구나무, 맥...
튀르키예에 처음 도착했을 때 길에서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은 사진이 있다. 누가 봐도 이곳이 튀르키예 땅이라고 알려주는, 별과 초승달이 담긴 붉은 국기 월성기였다. 특별한 국경일이어서 국기를 걸어둔 것이 아니었다. 길에도, 상점에도, 심지어 자동차나 사람들이 입은 티셔츠에도 월성기가 또렷이 그려져 있었다.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국기를 내걸어야 하는 규율이 있는 ...
딸아이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래를 불렀다. 누구는 그걸 다운증후군의 특성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아이에게는 나름의 패턴을 정하고 그것을 반복하려는 습관이 있다. 아이는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년째 같은 아침이다. 아이가 부르는 노래는 가요나 애니메이션 주제가는 아니고, 그저 우리가 다 아는 ...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어느 정도 자취를 감춘 9월, 조금씩 차가운 음료를 줄이고 다시 따뜻한 커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이맘때면 라테와 유난히 잘 어울리는 피칸파이가 생각난다. 케이팝(K-POP) 말고도 외국인이 좋아하는 케이푸드(K-FOOD). 비빔밥, 불고기, 삼겹살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고깃집으로 향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여럿 보았다. B...
단독주택에 살면서 고등어 굽기에 대한 고민이 말끔히 해결되었다. 마당 데크에서 소형 부탄가스 버너를 이용해 고등어를 구우면 냄새는 탁 트인 푸른 하늘에 퍼지고 하나도 비리지가 않다. 휴일 아침, 마당 데크에서 고등어를 구웠다. 부엌에서 구우면 하루 종일 집안에 생선 비린내가 진동한다고 나가서 구워오라는 아내의 지엄한 분부 때문이다. 실제로 집안에서 고등어를 구우면...
대만의 감수성이 의외로 우리와 통한다는 걸 알게 된 건 청핀서점에 꽂힌 책들을 보면서였다. 청핀서점은 우리로 치면 교보문고 같은 곳이다. 대만을 대표하는 서점이며, 지역마다 색다르게 구성되기도 하고 대만의 유행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그런 서점이다. 거기에 펼쳐진 책들, 그 책들이 지향하는 취향이나 정서가 우리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이베이를 구경할 때도 우리...
집은 자고로 아무에게 방해받지 않고 편하게 쉬는 공간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설혜, 정지원 자매가 사는 집은 외부인이 자주 드나들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가족처럼 편하게 어울리니 호기심이 커진다. 자매의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당신이 꿈꾸는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누군가가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이런 삶의 풍경을 떠올릴지 모른다. 마음 맞는 친구...
엄마는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며 네 명 몫의 집안일을 해냈다. 아침밥과 준비물을 챙기는 모습이 팔이 여러 개 달린 가제트 같았다. 분주한 움직임으로 김에 밥을 싸서 넣어주면 자식들은 쉼 없이 입을 오물거렸다. 그런 엄마가 멍하니 노래를 듣는 모습이 기이했다. 궁금증을 참지 않는 9살 어린이였지만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엄마는 카세트테이프로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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