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귀가 없으면 어때. 헤엄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수영장에 초록 거북이가 나타났다. 내 앞에서 헤엄쳐가며 내게 이렇게 말하고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간 잊고 살던 초록 거북이 ‘귀돌이’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귀돌이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날도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골목길로 ...
남편이 직장을 옮기면서 30년 만에 이사한 동네는 울산 천곡동이다. 집 앞으로 동천강이 유유히 흐르고 아침에 일어나면 구름에 감긴 산봉우리도 볼 수 있는 동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이 동네를 좋아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오래 살다가 남편과 미국에서 4년간 머물고 귀국한 내게는 시골의 고요함이 지루하기만 했다. 내가 적적해할 때마다 남편은 날 역으로 데려...
작년에 강원도 강릉의 안반데기에서 별을 본 경험은 남편과 내 삶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뒤로 우린 자타공인 ‘별바라기’가 되었다. 하지만 얼굴 위로 별빛이 쏟아지는 행운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 부부는 자주 별을 보러 다녔지만 매번 실패했다. 집에서 가까운 한우산 정상에 올랐던 날은 모기떼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와 실패, 김해 천문대와...
정든 공간과의 이별은 사람과의 이별만큼이나 슬프다. 얼마 전에 자주 들렀던 동네 책방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굉장히 헛헛했다. 동네에서 책방을 떠나보내는 일은 여러 번 겪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긴 힘들었다. 첫 번째 책방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았다. 책방이 사라진 자리를 지날 때마다 마지막 방문 날이 떠올라 마음이 쓰렸다. “...
코끝에 알싸한 겨울 냄새가 묻어오기 시작하면 마음이 춥던 청춘 시절이 떠오른다. 가업인 양말공장을 접고 온 식구가 가난의 짐을 분담한 채 힘겹게 살아가던 20대 초다. 가세가 기운 상황에서 대학교 졸업생이 된 나의 시름은 깊었다. 적성에도 맞고 돈벌이도 괜찮은 일이 무엇인지 매일 고민이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대기업 인사팀들이 학교에 방문해 앞다퉈 취업설명회를 ...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과 나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모닥불을 피우며 느끼는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숙연한 분위기가 어색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직접 쓴 짤막한 손 편지를 순서대로 읽고 있다. 한 아이가 편지를 읽다가 말을 잇지 못하며 조금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 눈물은 순식간에 옆 사람들에게 전염되더니 내 눈...
지금 다시 떠올려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남편의 출장 후일담이 있다. 얼마 전 학회 참석 차 열흘 정도 인도 출장을 다녀온 그이가 들려준 이야기다. 남편은 학회 발표 외에도 여러 대학 특강과 미팅 일정으로 출장 기간 내내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날도 피로에 지친 몸으로 오후 일정을 준비 중이었는데 만나기로 한 교수로부터 미팅을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
얼마 전에 뜻 깊은 택배 하나가 내 앞으로 배달되었다. 상자를 열자 깻잎, 가지, 방울토마토, 비트 등 각종 채소가 먼 길 오느라 지쳤는지 얌전히 누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농 2년 차 농부인 남편이 텃밭에서 기른 작물들이었다. 매일 밭을 가꾸는 재미에 빠져 지내는 남편의 싱글벙글한 얼굴이 채소 위로 둥둥 떠올라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은 몇 년 전에...
“이리 와 봐요. 빨리!” 나의 다급한 부름에 주방으로 들어온 아내 앞에서 난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프라이팬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런 다음 팬을 튕기듯 들어 올리자 공중제비를 돈 재료들이 팬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순간, 아내와 나는 감격에 겨워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1년 전,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접고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차렸다. 요리를 ...
나는 ‘주파라과이 한국교육원’ 소속의 한국어 교사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현지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기에 이른 새벽 집에서 나와 거친 비포장 길을 달려 전국 방방곡곡으로 출강을 나가곤 한다. 얼마 전에는 전국 학교에서 ‘올림피아다’라는 경시대회가 열렸다. 한글의 유래, 한국의 명절, 한반도 지명 등 한국에 대해 깊이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됐는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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