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업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10년 전,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가 근무하는 연대에 일반 병사로 입대하면서 아버지와 나는 훈련병과 주임원사의 관계에 놓였다. 집에서는 서로 장난을 치며 허물없이 지내던 아버지가 후임들에게 업무지시를 하며 엄격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나도 저렇게 늠름한 군인이 되어야겠다는 결...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이 힘겨운 때가 내게도 있었다. 사업하는 친구의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하소연에 2년간 모은 적금까지 해약해 큰돈을 빌려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잠적해버린 일이 원인이였다. 돈을 잃은 것보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이겨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이 찾아와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잠시 휴식기를 가져야 했다. 그날...
어린 시절,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 대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내성적이다 못해 소심했던 나는 사람들 틈에서 항상 움츠려있었고 울기도 잘 울었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다정히 다독여주셔서 나는 금세 웃음을 되찾곤 했다. 유난히 음식솜씨가 좋았던 외할머니는 빵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을 가득 메운 고소한 빵 냄새에 정신...
애정 표현에 영 소질이 없는 7년 차 주부인 내가 식구에게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요리다. 맘속으로 ‘사랑하는 남편, 맛있게 먹어’라고 말하며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얘들아, 엄마한텐 너희가 제일 소중해’라고 속삭이며 불고기를 굽는다. 지금이야 요리하는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고 있지만 신혼 시절만 해도 요리에 일절 관심이 없었다. 결혼해서 난생...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는 언제 들어도 애틋하다. 짙푸른 강물의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송어처럼 발랄한 소녀 한 명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 내가 살던 하숙집의 2층 방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던 이웃집의 막내딸이다. 주말이면 우리 동네 골목에는 소녀가 송어를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퍼져나갔다. 나도 한창 기타를 연습하던 시기여서 악보 없이 그녀의 연주만 듣고 더듬더듬 따라 쳐보던 그 시간이 즐거웠다. 나의 서툰 기타 소리가 소녀에게도 들렸는지 창가에 앉아있던 나를 올려다보며 “기타로 송어를 잘 쳐요?”라고 묻는 동그란 얼굴이 참 귀여웠다. 동네에서 마주치면 장난도 치고 간식도 나눠 먹으며 친하게 지낸 소녀와는 ...
평소에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동이 트기도 전에 동네에 있는 남광주 전통시장에 가는 것으로 내 하루는 시작된다. 맑은 새벽공기를 마시며 가로수길을 걷노라면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시장에 도착하면 오전 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도 활기가 느껴진다. 텃밭에서 막 솎아온 봄동, 무, 고추...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의 나는 운이 참 없었다.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19가 퍼져 엠티나 미팅, 여행 같은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을 죄다 포기하고 집, 학교, 도서관만 오가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따분한 일상에 유일하게 찾아온 변화가 바로 군 입대였다. 예전부터 원하던 특전사로 입대한 나는 어떤 훈련이든 잘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욕이 가득했다. 무...
나는 스물여섯에 애들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충청북도 증평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출산을 하고 큰아이가 7개월 됐을 때 초복을 맞아 삼계탕을 준비했다. 요리에 서툴렀던 터라 솥 대신 일반 냄비에 닭을 넣고 삶았다. 그래서 푹 삶아지지 않았던지 닭 뼈와 살코기가 잘 분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남편은 굳은 표정으로 질긴 닭다리를 뜯었...
“대체 고3 맞아? 남들은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난리인데 넌 어쩜 그렇게 공부를 안 하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아이는 식탁에 차려놓은 아침밥을 한 술도 뜨지 않은 채 현관문을 나서버렸다. 내 생일인 오늘만큼은 같이 미역국에 따뜻한 밥을 먹고 등교시키고 싶었건만 이렇게 또다시 서로 상처만 입고 말았다.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할 때마다 가슴속에 가시처럼 걸리던 ...
나의 과거사를 한 가지 고백하자면, 초등학교 다닐 적에 커닝을 한 적이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시험점수가 낮으면 엄마에게 혼날 것 같아 쉽게 유혹에 빠져버렸다. 커닝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의외였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칭찬해줄 줄 알았는데 별말이 없으셔서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높은 점수를 바란 게 아니었던 걸까?’ 엄마가 좋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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