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 얼마 전, 동네 생활협동조합 매장의 한 쪽 구석에 있던 멸균팩 수거함에 적힌 문구를 보고 머릿속이 반짝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간식으로 두유를 먹고 가위로 팩을 잘라 펼쳐 버리는 것이 번거로워 일반쓰레기로 버리기 일쑤였는데 이제 멸균팩 수거함에 버리면 좋을 것 같아 바로 실천에 나섰다. 회사에서 마신 두유팩의 윗부분을 잘라 깨끗이 ...
할머니 댁 창가에는 형형색색의 화분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거실과 세 개의 방,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을 합치면 족히 40개는 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 댁에 놀러 갈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화분이 생겼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날 할머니 댁에서 발견한 새로운 화분은 동글동글한 몽오리가 귀여운 녀석이었다. 꽃은 아닌 듯해 할머니께 여쭤보니 ‘수태’라고...
언어치료사로 일한 지 올해로 10년. 분명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지만 사실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하루에 7~8명의 아이들을 만나 언어적인 자극을 주고 그와 동일하게 부모님 상담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이 들거나 한참을 누워있다 간신히 밥을 챙겨 먹고 잠이 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은 집에 돌아와 침...
주말마다 집들이를 하던 신혼 초. 그날은 남편 고등학교 절친 부부들이 집들이를 온 날이었다. 얘기 중에 “둘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어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중매로 만났는데 그냥 막차 아무거나 탔지 뭐.” 내 대답에 모두들 화들짝 놀라며 남편 눈치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매서운 눈빛과 마주쳤다. 순간 뭔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구나 싶었다. 나는 손님들이 돌...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간 큰아들한테는 생도 때부터 집에 놀러 와 내게 ‘어머니, 어머니’ 하며 살갑게 굴던 여자 동기가 있었다. 임관 후에도 연애를 이어가더니 결혼하여 둘은 군인부부가 되었다. 아들만 둘이었던 나는 딸이 생긴 것처럼 좋았다. 가뜩이나 며느리는 나와 얼굴도 많이 닮아 둘이 다니면 “딸이 있었어?”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 며느리에게 더 정이 갔다. 그러던...
몇 달 전 작은집에서 암캐 한 마리를 주고 가셨다. 그런데 집에 단단히 묶어두었음에도 돌아다니던 수캐에 의해 새끼를 배고 말았다. 곧이어 새끼 강아지들이 태어나자 부모님의 고민이 깊어졌다. 강아지가 사료값만 있다고 크는 게 아니지 않은가. 시간 맞춰 밥 줘야 하고, 집을 마음대로 비울 수도 없고.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았다. 결국 수놈만 남겨두고 암놈은 다른 사람에게 ...
“언제 한 번 놀러 와요. 이곳은 도시보다는 코로나가 덜할테니.” 낯선 번호로 연락이 온 건 작년 여름의 일이었다.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때라 갑작스러운 초대가 반가웠다. 발신자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하루 묵어간 적 있는 하동의 민박집 사장님이었다.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 쯤으로 끝날 인연이 깊어진 건 주인장과 나눴던 이야기가 참 많았던 까닭이었다....
크리스마스 불빛이 거리를 수놓던 지난 연말, 나는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목에 생긴 물혹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전신마취는 여든을 앞둔 고령 환자에게 깊은 근심거리였다. 전신마취로 인한 부작용, 기저질환의 악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 등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물가물 흐려지는 꽃길을 건너 저세상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은 ...
동네에 젊은 미용사 혼자 운영하는 1인 헤어숍이 생겼다. 단골 미용실 말고 이번에는 새로운 곳에서 머리를 잘라보고 싶어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카페처럼 깔끔한 인테리어가 맘에 드는 곳이었다. “3센티 정도 다듬어주세요.” 나는 기계적으로 주문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다른 미용실 같으면 미용사가 날씨나 드라마 얘기를 꺼내며 시답잖은 수다를 시도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동...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아파트 입구의 화단에 무리지어 핀 개나리꽃을 보면 마음이 설레 동요가 절로 나온다. 빛바랜 추억 하나가 그 순간만큼은 선명한 노란 빛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단발머리 찰랑이며 아무 걱정 없이 뛰놀던 유년 시절, 아버지는 시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셨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 넷을 뒷바라지 하느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도 쉬지 ...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