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년 전,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는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들고 기쁜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 등단 소식을 알렸다. ‘수상한 부부’의 남편과 처음 연이 닿은 건 그때 무심코 적은 학교명 해시태그 덕분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그는 내가 대학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내 계정에 살뜰한 축하와 건필을 응원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 ...
마이크로타겟, 홈코노미, 휴먼터치…. 하루가 멀다 하고 암호 같은 신조어가 출현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기가 갈수록 버거워진다. 한 박자 늦게 따라가도 괜찮다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도 주변 환경이 나를 자꾸 채찍질한다. 지난겨울에도 그랬다. 사내 메일함에서 전국 부서장회의 소집에 관한 공문을 확인했다. 부서장회의야 새삼스러울 것 없었지만 메타버스 회의라는 방식이 퍽 낯설었...
붉게 물든 동백꽃이 통째로 떨어질 즈음이면 노란 복수초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내민다. 몽글몽글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땅속에서 개나리와 진달래가 ‘이젠 내가 먼저 나가도 되지 않을까?’ 하고 속삭이며 앞 다퉈 방긋방긋 웃는 봄의 길목이다. 봄은 곁에 가까이 와 있는 것 같다가도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쌩쌩 부니 아직 저만치 멀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봄아, 너는 어디쯤 오...
손녀 서우를 데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아들과 며느리는 요즘 가장 반가운 손님이다. 사업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들르는 아들 내외의 수고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하나 뿐인 사랑스런 손녀를 더 자주 보고 싶은 욕심은 커지기만 한다. 나의 이런 마음을 잘 아는 며느리는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전송해 준다. 착한 어멈 덕에 나는 손녀의 성장과...
어린 시절, 학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옆집 담벼락에 기대어 듣던 피아노 소리를 기억한다. 서툴지만 아름다운 어린 음표들의 발자국 같던 그 소리….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피아노를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내가 중학생이 되면 사주겠노라 약속을 미뤘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식 날, 내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집안 형편도 안 좋은데 피아노는 무슨 피아노!”라고 말을 뒤집으셨...
평소 근검절약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던 터라 나 또한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물건을 살 때도 할인쿠폰을 살뜰히 챙기고, 인터넷 최저가를 꼼꼼히 검색하는게 필수다. 또한 선물을 살 때도 실용성을 먼저 따지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내에게도 연애 때부터 결혼 3년 차인 지금까지 총 5년여의 시간 동안 꽃 한 송이 한 번 사주지 않았다. 시들고 마는 ...
5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두 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한 지 100여 일이 지났다. 한 집에서 살아 보니 남편은 연애할 때 알던 것보다 참 많은 장점을 가진 사람이다. 우선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 상대적으로 감정 기복이 있는 내 중심을 잘 잡아주고, 유머코드도 잘 맞아 집에서 서로 눈만 마주쳐도 웃음꽃이 필 정도로 대화가 잘 통한다. 남편과 손잡고 동네 산책만 나가도 세계여...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자는 아내와 아이들의 제안을 오랫동안 허락하지 않고 있던 돌부처 가장이었다.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키우는 비용 등 이런저런 것들이 맘에 걸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겐 반려동물을 향한 애정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뜨거워진 가족들의 바람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토끼들이 우리 집에 온 지 어느새...
나는 대중목욕탕을 참 좋아한다. 뻐근한 몸을 뜨끈한 물에 푹 담그고 나면 한결 개운해질 뿐더러 야무지게 때를 밀고 나와 시원한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노라면 아무 고민도, 걱정도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많으면 일주일에 서너 번, 적으면 두 번 정도 꼬박 꼬박 대중목욕탕에 발 도장을 찍는 일이 내게는 하나의 즐거운 취미 생활이었다. 그러나 몹쓸 바이러스의...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설 연휴에 시부모님 댁에 내려가지 않기로 한 뒤 남편의 기분이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 연휴 기간은 물론 다시 일상이 시작된 후에도 남편은 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지냈다. 어쩌다 내가 묻는 말에만 단답형으로 대꾸하는 남편에게 나도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코로나 걱정도 되고, 다섯이나 되는 조카들에게 줘야 할 세뱃돈도 부담스러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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