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드는 겨울이 왔다. 호빵, 손난로, 무릎담요 등 몸을 포근하게 해주는 겨울 아이템들은 많지만 선배와의 추억을 회상할 때 난 가장 따뜻해진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3년 전쯤, 난 일과 육아가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매일 허덕이고 있었다. 아이를 깨우고, 입히고, 먹이고, 차에 태워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 학교로 출근하다 보니 늘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일찍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배달을 다니는 내겐 날씨만큼 중요한 게 없다. 새벽 5시 30분 즈음부터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 어느 날이었다. 아직 배달할 신문이 많이 남았는데 빗줄기가 점차 거세지더니 일기예보와 달리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다. 근처 상가건물에서 잠시 비를 피해 봤지만 곧 잦아들 거란 기대를 비웃듯 쉼 없이 비가 내렸다. 더는 지...
남편의 알뜰함은 평균 이상을 넘는다. 아이들이 먹다 남긴 밥도 절대 버리지 않고 싹싹 긁어 먹어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 건 물론, 세 가지 이상 반찬을 만들면 그날 하루는 온종 일 남편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장보기마저 남편 몫이 되어버렸다. 한창 클 나이인 아이들을 위해 고기라도 사 먹이려고 하면 남편은 “고기는 한 달에 한두 번 ...
모처럼 아이들을 맡기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 아내가 휴대전화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기 좋아 곧바로 ‘우리 자기가 제일 예뻐서 눈이 부시네!’라고 답장을 보냈다. 얼마 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또 날아왔다. 이번에는 커피 가 담긴 하얀색 머그컵과 딸기케이크를 찍은 사진이었다. ...
지난 4월 초, 들에 나갔던 길에 누군가 하천부지 쓰레기장에 버린 꽃나무가 눈에 띄었다. 막 꽃망울을 달고 있는 꽃무더기가 너무 예뻐 보여 같이 갔던 남편에게 부탁해 비닐봉투에 담아 집으로 돌아와 화분 두 개에 나누어 심었다. 출입문 안쪽 계단에 놓아두었던 화분에선 며칠 후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꽃나무이기에 이렇게 예쁜 걸까 싶어 한참을 들여다봐도 이름을 알...
초등학생이 된 내게 아빠가 준 입학선물은 두껍고 묵직한 국어사전이었다. “모르는 단어나 궁금한 낱말이 있으면 알려주는 만능 해결사 같은 거야.” “해결사? 이게 다 해결해 줘?” “그렇지. 공부하다가 답답하거나 막히는 게 생기면 언제든 이 사전을 찾아봐.” “알았어, 아빠!” 대답은 시원스럽게 했지만 초등학생이 국어사전을 쓸 일이 몇 번이나 되겠는가. 몇 년간 책장에서 두꺼...
내게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날씨를 검색하는 습관이 있다. 그날도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니 강수확률이 20%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우산 없이 외출해도 되겠다 싶어 운동화를 구겨 신고 나갈 채비를 서두르는데 등 뒤에서 걱정스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비 올 것 같은데 우산 안 가져가도 되겠어?” “비 올 확률이 20% 밖에 안 돼. 우산 가져가면 가...
“오늘도 막내딸이 쏜다!”요즘 부모님과 2주에 한 번씩 맛집 탐방을 다니는 내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밥을 다 먹고 계산대 앞에 선 나를 부모님은 무리하지 말라며 말리시지만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쓰는 돈이 아깝거나 부담스러운 적은 한 번도 없다. 평생 부모님 품 안에서 살다가 취업준비와 함께 독립한 나는 엄마 아빠의 온기가 늘 그리웠다. 마음 졸이며 숱한 자기소개서들을...
퇴근길에 종종 들르는 회사 앞 과일가게는 값이 저렴한 덕분에 좋은 과일들이 들어오기 무섭게 금방 동이 나버린다. 퇴근이 조금 늦어진 날엔 얼마 남지 않은 과일 앞에서 아쉬움을 삼키며 돌아선 일도 여러 번이다. 어쩌다 운이 좋아 그 시간까지 싱싱하고 맛있는 과일들이 잔뜩 남아있는 날이면 오는 길에 돈이라도 주운 것 마냥 횡재한 기분이 들만큼 나는 과일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 회사는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곳으로 꼽히는 강남역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IT회사에서 관리직으로 재직 중인 내 업무에는 납품 물건을 직접 포장해 근처 우체국으로 가져가 발송하는 일도 포함된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그날도 제품이 담긴 박스들을 손수레에 싣고 사무실을 나선 길이었다. 고가의 장비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젖을까봐 조심조심 손수레를 끌며 걸어갔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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