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앗아간 제일 소중한 일상을 꼽자면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던 저녁이다. 신입생 시절, 중앙밴드동아리 입단 탈락자들끼리 정기적으로 노래방에 모여 우리끼리라도 마음껏 노래 부르자는 취지에서 결성한 ‘싱어룸’은 대학생활에서 내게 가장 큰 웃음을 준 과동아리 활동이었다. ‘선 음주, 후 노래방’이라는 공식을 깨고 맨정신으로만 노래방을 찾을 만큼 우리 여섯 명의 노래를 향한...
“엄마, 어디 가는데? 우리도 같이 갈래!” 좀처럼 혼자 외출하는 법이 없던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따라 나서겠다고 보채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읽을 책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남편과 사소한 신경전을 치렀던 그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나선 길이었다. 마침 동생이 선물해준 음료 무료쿠폰의 만료일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을 때라 쿠폰을 사용할 수 있...
살던 집의 전세계약이 만료되어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신혼살림을 차릴 때는 단출했는데 언제 짐이 이렇게 늘었는지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며칠이나 걸렸다. 집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친 어느 날, 롤케이크를 하나 사서 아랫집 초인종을 눌렀다. 벨소리가 나자 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고 70대 노부부가 나오셨다. “안녕하세요. 위층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에요. 아마 저희 애가 뛰어다녀서 ...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과 낯선 캐나다 땅으로 이민 온 지 어언 30년. 새 터전을 일구느라 변변한 가족여행 한 번 가지 못하고 고군분투해온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 와중에 1박 2일로 짧게 떠났던 어느해 여름휴가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막내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남편, 큰아들 식구들과 몸을 싣고 토론토 알곤퀸 국립공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도착하기까지 30분 정도 남...
나는 공공기관 상담센터에서 직업훈련분야를 안내해주는 전화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친절 응대를 기본으로 하는 상담원인지라 때론 고객의 핀잔이나 조롱, 거친 욕설도 참아 넘겨야 하고 속상한 일을 당할 때도 있다. 그런 반면 가끔은 일하는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한번은 한국에 시집와 살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중국인 새댁에게 전화가 왔다. 국비로 교육을 받고 가까운 곳에 취업을 하고...
우리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죽도시장이 있다.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 최대의 전통시장으로 신선한 해산물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나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죽도 시장에 가서 남편이 좋아하는 갈치를 비롯해 낙지, 도루묵, 마른 멸치, 김, 노가리, 오징어채를 사오곤 한다. 그날도 시장 안은 인산인해를 이뤄 6층짜리 주차타워 5층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주차를 할 수 있...
‘엄마, 집에 언제 와요?’ 오늘 아침에도 막내아들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아들에게 연락을 받을 때마다 ‘엄마 조금만 있다가 갈게’라는 대답으로 일관해온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영상통화로 매일 봐도 보고 싶은 아이들. 살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지 못하니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이라는 어느 유행가의 가사가 딱 내 마음과 같다. 난 대한민국 여군 장...
서울에 사는 막내딸 부부와 귀여운 손녀가 내려온 어느 봄날이었다. 저녁 무렵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놀다가 맞은 이튿날 아침, 재를 텃밭 옆에 버리고 난로를 깨끗이 청소한 후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집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이야, 불!” 너무 놀라 당장 마당으로 나가 보니 잔뜩 독이 올라 뒷산으로 번져가는 불길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조금 전...
동틀 녘, 실눈 사이로 하얀 가운자락이 아른거리고 누군가 날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의식이 돌아왔다. 야식집 영업을 마치고 새벽에 가게 문을 나선 것까지는 선명한데 그 뒤론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눈을 뜬 곳은 대학병원 응급실, 고혈압으로 쓰러져 실려 온 것이었다. 위중한 환자들만 있다는 13층 순환기내과 병실에 누워 스텐트 시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눈앞이 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일 만나는 이들이 있다. 분주한 손길로 아파트 이곳저곳을 챙기는 경비원 아저씨, 아침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는 떡집 사장님 등 평범한 내 삶을 행복으로 채워주는 분들이다. 골목 모퉁이에서 마주치는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버려진 것들을 하나하나 주워 실어 무거워진 수레를 끌고 천천히 발길을 옮기는 할머니 또한 내겐 특별한 분이다.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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