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이자 동요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창작 가곡 출품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 2017년, 화천 ‘비목 콩쿠르’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중 우리 가곡 마니아 부문이 신설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선구자를 즐겨 부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국 가곡 마니아인 아버지가 이 대회에 참가하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참가를 망설이시는 아버지를 설득하기를 여러 번. 마침내 참가하겠다는 확답을 받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으신지 여쭙자 아버지는 ...
팔순 넘은 시골 노모가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지난해 당신 손으로 담갔을 구수한 된장 한 봉지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안부 전화를 드렸을 때 여름이라 그런지 통 밥맛이 없다는 말을 흘려듣지 않으시고 커다란 봉지 한 가득 된장을 담아 보낸 것이었다. 모처럼 ‘어머니표 된장찌개’를 끓여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 아내가 “제 아무리 된장찌개로 유명하다는 식당을 ...
부부 사이에 운전은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우리 부부에게는 운전만큼이나 위험한 게 배드민턴이다. 이상하게도 배드민턴을 같이 치면 꼭 싸우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체육센터도 휴관을 하고 집에서 먹기만 하는 나날이 계속되니 우리 부부의 몸이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나중에 빼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차일피일 다이어트를 미루던 어느 날,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
어느덧 직장생활 6년차.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년이라는 시간은 나를 원인 모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했다. 얼마 전 근무지원을 나가야 할 일이 생겨 우리 부서에서도 나와 신입직원이 차출되었다. 평소 일하는 자리가 멀어 제대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 어색한 사이였지만 나는 선배답게 “오늘 하루 잘해보자!” 하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해맑게 인사를 받아주는 후배의 모습이 ...
“오늘은 내가 시끄러운 숲에 데려가 주지.” 일요일 오후까지 한참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남편이 대뜸 시끄러운 숲 얘기를 꺼냈다. ‘시끄러운 숲이라…. 숲이 시끄러울 수가 있나?’ 갑천변의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샛길로 빠져 한참을 달려 겨우 차 한 대 지나가는 굴다리를 빠져나가니 생각지도 못한 메타세쿼이아 숲이 펼쳐졌다.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갈라지는 회덕분기점 사이에...
지난 해 10월, 코이카 봉사단원 자격으로 우즈베키스탄 땅을 밟았다. 날씨가 좀 덥고 건조했지만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언어도 생각보다 배우기 쉬워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어서 어디를 가든 환영 받았고 때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호의를 받기도 했다. 내 업무는 ‘부하라 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육생들을 모집해 매...
얼마 전부터 남편은 토익과 사랑에 빠졌다. 매일 새벽마다 일어나 열심히 토익 공부를 한다. 내가 잠이 깰까 스탠드를 켜놓고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누워있는 내 마음은 편하진 않다. 남편의 나이는 65세. 적잖은 나이라 영어 공부가 무리일 수 있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터라 진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특히 리딩 점수를 올려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뇨와 고...
각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아들의 휴가에 맞춰 모처럼 다같이 여수여행을 다녀왔다. 살포시 운무가 깔린 산은 비릿한 냄새의 바다를 뱉어냈고, 가까이엔 청록의 신작로가 펼쳐져 좋았다. 돌아오는 날 아침, 여수에 살고 있는 딸의 추천으로 토박이들이 자주 간다는 백숙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닭죽까지 든든히 먹고 돌아가던 중 갑자기 ‘턱’ 하는 소리가 났다. 나와 보니 자동차 왼쪽바퀴...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영화 속 악당들은 왜 하나 같이 얼굴이 빨갛게 그려졌던 걸까? 학창시절 내 별명은 ‘붉은 악마’였다. 피부과 의사의 말로는 ‘선천성 중증 안면홍조증’이라고 했다. 피부가 하얗거나 아예 까무잡잡한 친구들 사이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붉은 얼굴을 가진 아이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춘기 때도 내 고민에 비하면 친구들의 여드름은 장난이었다. 유난히 붉은...
집으로 반송돼 돌아온 편지를 보니 가슴이 저릿해진다. 겉봉투에 찍힌 ‘수취 거부’ 표시가 굳게 닫혀있는 친구의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친구의 마음속에 대못처럼 박혀 있는 나에 대한 미움은 언제쯤 사라질까, 내가 어쩌다 이렇게 남의 가슴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 놓았을까! 그에게 나는 정말로 용서하기 힘든 죄인이었다. 젊어서 무리하게 벌인 사업이 문제였다. 자금 회전이 어려워...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