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 독일에서 공부하는 딸과 아들을 보러 부모님이 베를린에 오셨다. 도착하자마자 집이 춥다는 엄마가 고단해 보여 따뜻한 전기담요를 켜둔 내 침대를 내어드렸다. 모두 다 잠이 든 시각, 나는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잠을 뒤척이는 내 귀에 화장실에 가시는 엄마의 인기척이 들렸다. 한국에서도 엄마는 새벽에 자주 화장실에 ...
길고 긴 겨울도 꼬리를 내리고, 봄볕이 따스해지니 봄나물이 먹고 싶어졌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이맘때쯤 항상 끓여주던 냉이콩가루된장국 생각이 간절해 기어이 집을 나섰다. 하지만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는 냉이를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트에는 없어도 시장에는 팔겠지?’라는 기대에 동네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그러나 재래시장에도 냉이는 없었다. “냉이 철은 이미 지...
며칠 전, 집 근처 마트에 들렀을 때였다. 매장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떨어진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슬쩍 보이는 봉투 안에는 돈이 들어있었다. 순간 내가 가져도 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돈을 잃어버리고 허둥거릴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음을 고쳐 먹고 일단 주워서 신고하자는 생각에 봉투를 집어 든 나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돈 봉...
어린 시절 나는 자기 방이 있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다. 단칸방에서 여러 식구들이 함께 살던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공부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책들도 많이 보관하고 싶었는데 가난한 형편에 내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그 꿈이 마침내 59년 만에 실현되었다. 군인 장교가 되고부터 가끔 오는 아들 방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아...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셨기에 우리 세 자매가 혼자 되신 아버지의 집안 살림을 거들었다. 첫째인 내가 옷가지, 둘째 동생은 밑반찬, 셋째는 생활용품 등을 담당하며 빨래나 대청소 등을 대신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버지 방을 청소하던 중 낡은 노트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메모처럼 쓰신 아버지의 일기장이었다. ‘5월 10일 김서방(셋째 사위)이 오만 원을 줬다, 9월 5일 둘째...
산에 들에 봄빛이 짙어간다. 새 옷으로 산뜻하게 갈아입은 숲속을 맘이 맞는 친구들과 거닐고 싶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꼭꼭 문 닫고 사는 요즘이니 꽃구경 가자고, 쑥 캐러 오라고 선뜻 친구를 불러내기가 망설여진다. 잠시 유년의 추억을 산책하며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우울함을 달래보려는 내게 아늑한 산속, 뭉게구름 노니는 하늘 아래 즐기던 소미꼬지 잔치가 떠올랐다. 어려서...
아버지는 충남 서천 출신으로 원래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어 열세 살 나이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먹고살기 위해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영등포 당산공단에서 20년, 인천공단에서 40년간 일하면서 60년 넘게 금형 기술로 생계를 이어오신 분이다. 어느덧 칠십을 넘기시고, 공장 일감도 줄어들어 아버지는 원치...
마트 입구에서 프리지어 꽃을 다발로 팔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최소 3만 원은 지불해야 될 텐데 단돈 만 원이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졸업식, 입학식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꽃이 팔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9,800원도 내겐 적지 않지 않는 돈이지만 나는 성큼 프리지어 한 단을 집어 들었다. ‘꽃은 밖에서 감상하고 그 돈으로 찬거리를 사면 훨씬 경제적일 ...
나보다 먼저 결혼한 동생이 지난여름 귀여운 조카를 낳았다. “너도 곧 조카바보가 될 거야!”라고 말하던 친구들의 예언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어느새 나도 그 일원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조카의 동영상을 보고 또 보고, 인형과 옷 등의 선물을 한 아름 사서 동생네 집으로 실어 날랐다. 하지만 나의 조카 사랑도 엄마의 손주 사랑을 뛰어넘진 못했다. 제부가 한 달 동안 출장을 ...
거실 창으로 찔레나무를 감상하는 시간을 나는 사랑한다. 특히 꽃이 만발하면 우리 집 거실은 찔레꽃 향기가 가득해 꽃동산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요즘 찔레는 아기고양이 발톱만 한 새잎을 틔우느라 분주하다. 성질 급한 녀석은 벌써 제법 연두색으로 자라 우리 집 유리창에 자기 뺨을 부비고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나는 아침마다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날려준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