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오늘이 혹시 네 생일이야?”며칠 전 점심시간, 내가 싸온 김밥을 맛있게 먹던 신입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한국 음식, 아니 그보다도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이렇듯 직접 음식을 만들어 왔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옆에 있던 직원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정아, 오늘 네 기분이 어떻기에 이런 음식을 만들어 온 거야?” 하고 물었다. 독일에 온 ...
가족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사이 창밖 풍경이 너무 좋아 베란다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맑은 하늘이 너무 예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베란다 창틀에 쌓여 있는 먼지를 발견한 나는 아침식사를 끝낸 남편과 아이들이 회사로, 학교로 갈 준비를 하는 사이에 베란다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창틀 사이에 겹겹이 쌓인 먼지 제거에 나섰다. 마른 ...
오랫동안 절에 다녀 ‘도심월’이란 법명을 가진 나는 절에서 만나 친해진 불자 여덟 명과 지난해 3월 불교국가 라오스로 3박5일의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6개월 후 다시 모여 그때의 사진을 꺼내보며 즐거운 추억에 젖은 우리는 이번엔 짧은 국내여행을 다녀오기로 의견을 모았다. 친구에게 여수에 있는 아담한 흙집 펜션을 소개받아 미리 예약을 했다. 일상을 잊고 여유를 즐기자며 계획한...
내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구름 이불을 뒤집어쓴 듯 궂은 날씨가 계속된다. 매년 그 무렵이면 철새처럼 한국 친정으로 날아가 ‘월추(越秋)’를 하고 돌아오던 나는 재작년 처음으로 사계절이 온화하고 햇볕이 좋아 유랑자들이 노숙하며 장기 체류한다는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로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섬에 도착해 언덕을 오르다 바나나나무 사이로 무성한 잎을 드러...
어릴 적 몸이 아플 때면 늘 떠올리던 것이 있었다. ‘내가 아프니까 엄마가 또 사오시겠지?’ 하며 은근히 기다리게 되던 그것. 몸이 불덩이처럼 펄펄 끊고,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그것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건 바로 통조림 복숭아 ‘황도’다. 지금처럼 군것질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 달콤하고 부드러운 황도의 맛은 어린 내게 황홀 그 자체였다. 그걸 먹으면 아픈 것도 ...
내가 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봉다리 방송국’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아들 때문이다. 대학을 휴학한 뒤 전공과 관련 있는 마을 방송국에서 기술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이 ‘시 사랑’이란 시 낭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며 나를 부추겼다. “엄마 평소에 시 읽는 거 좋아하잖아.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와서 낭송하는 것만 잠깐 도와주면 돼.” 아...
얼마 전 서울에 올라와 사는 고향 친구들과 정기산행을 마치고 근처 대중목욕탕으로 몰려갔을 때였다. 허름한 동네 목욕탕은 우리처럼 산에 다녀오는 길인 듯한 남자 대여섯 명 외엔 이용객이 거의 없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펄펄 끓는 온탕에 몸을 담그니 하루 종일 퉁퉁 부었던 발과 무거운 배낭에 짓눌렸던 어깨 근육이 비누처럼 풀어지는 것 같았다. 친구들 입에서도 약속이나 한 듯 ‘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져 자취를 하게 되었다. 회사 근처 오피스텔에 입주하니 몸도 마음도 한결 편했다. 30분 더 아침잠을 자고 지옥철에도 시달리지 않으니 생활의 질이 높아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편한 게 있었다. 보는 눈이 없다는 점이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던 동네에는 아는 얼굴들이 많아 항상 동네 분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했다....
남편은 올해로 28년 차인 건설 현장 목수다.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공사현장이다 보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나는 늘 출근하는 남편을 붙들고 당부에 당부를 잊지 않는다. “안전화, 안전모, 보안경 잊지 마시고 연장 다룰 때는 특히 조심하세요.” 하지만 아무리 주의를 한다고 해도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날카로운 연장이나 못에 찔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언니와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9살 터울이니 내가 구구단을 외울 때 언니는 대학입시를 치렀고, 내가 수능시험을 끝내고 놀러 다닐 때 언니는 취업해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갓 대학에 들어간 나는 언니의 청첩장을 접는 것 말고 달리 해줄 게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시집가는 언니의 빈자리를 느끼며 벌써부터 서운한 기색을 내보이기도 했는...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