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거리에 ‘사랑의 열매’ 온도계가 세워지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찬바람에 실려 거리를 가득 채운다. 모두들 다사다난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도 12월 하순이 되면 작은 도자기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돈을 꺼내 들고 지역 면사무소 이웃돕기 창구에 납부한 뒤 사랑의 열매 한 개를 받아온다. 내가 이런 작은 기부를 여러 해 동안 하게...
남편이 출근 전 집 근처에 구두 수선하는 곳이 없는지 물었다. 살펴보니 한쪽 구두굽이 거의 닳아 있었다. 언젠가 남편을 뒤에서 보는데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아 양복을 입어도 멋이 없다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남편은 “매일 허리 구부리고 일해서 어깨가 기울어진 건가?”라고 대답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짠했다. 신발장에서 다른 신발을 꺼내 신겨 보내고 오후에 구두를...
여름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는 딸아이가 걱정돼 짐 푸는 거라도 도와주자는 생각에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예상은 했지만 미국은 멀고도 멀었다. 비행기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어렵사리 미국 땅을 밟았다. 이미 밖은 칠흑같이 어두운 자정에 가까운 시각. 미리 렌터카를 예약해둔 게 참 다행이었다. 그런데 공항 내 렌터카 영업소의 불이 꺼져 있었다. ‘분명 24시간 영업이라고 했...
아뿔싸, 명동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휴대전화가 꺼져버리다니! 휴대전화 배터리를 미처 확인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미 분당에서 명동으로 향하는 광역버스는 고속도로에 진입해버린 상황이라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약속 장소를 확실히 정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내가 버스에서 내려서 전화하기로 했는데 이를 어쩐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해결책을 찾아보았다. ‘지나가는 ...
“장기 여행일수록 캐리어가 가벼워야 해.” 한 달여의 동남아 여행에 동행하게 된 자칭 타칭 여행박사인 친구의 전달사항은 간단했다. 가벼운 새가 멀리 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최소한의 보따리로 가볍게 이동해야 한다는 것. 사실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로 계속 이동하는 여정에서 위탁수화물을 부치게 되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에 비용절감을 위해서라도 기내용 캐리어만 가지고 가는...
나는 일본에 살고 있는 평범한 일본인이다. 아침에 행복한 선물을 받았다. 택배상자에는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가 보내준 선물이 가득했다. 한국 과자, 김, 참기름, 북엇국, 그리고 홍삼제품까지…. 항상 내 건강을 염려해서 건강에 좋은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내주는 자상한 친구가 고맙다. 그 친구를 알게 된 계기는 SNS였다. 나는 6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93년 여름, 내가 활동하던 봉사동아리는 타 대학 두 군데와 연합하여 전남 곡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일주일간 농촌봉사활동을 펼쳤다. 농활기간동안 낮에는 부족한 일손을 거들고 저녁에는 막걸리를 앞에 두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피로를 풀곤 했다. 하루는 다른 학교에서 온 선배 한 명과 늦은 밤까지 얘기를 나누게 됐다. “넌 봉사동아리에 왜 들어왔니?”라는 질...
지난달 부모님 제사가 있어 전라도 광주에 있는 첫째 남동생 집에 우리 오 남매가 모였다. 5년 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늘나라로 떠나신 부모님을 기리는 이날만이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날이다. 장남인 남동생은 40대 중반의 청각장애인이다. 어릴 때 열병을 심하게 앓아 귀가 들리지 않는 동생은 온갖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왔다. 부모님과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열두 살에...
지금이야 아이스크림, 팥빙수 등 여름 먹거리가 많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수박이 최고의 여름 간식이었다. 경남 창원의 고향 동네에도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수박을 싼값에 사 먹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수박을 반으로 쪼개면 우리 오 남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서로 많이 먹으려 고개를 박고 숟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우리를 어머니와 아버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정문에는 길이 46미터, 폭 0.6미터의 작은 정원이 있다. 그곳은 지난 18년 동안 어떤 꽃을 심어도 금방 죽어버려서 잡초만 무성한 채 빈터로 방치돼 있었다. 올해 초 동대표 회의에서 정원을 살리기 위해 150만 원어치의 회양목을 구입해 심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괜한 돈 들이지 말고 내가 농사짓고 있는 도라지 모종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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