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엄마의 휴대전화로 택배 알림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이게 뭐지? 나한테 택배 보낼 사람이 없는데….” 휴대전화에 찍힌 송장번호를 검색해보니 수취인 이름, 주소, 휴대전화 번호까지 엄마의 신상정보가 틀림없었다. 문제는 발송인 란에 적혀 있는 ‘제주도 마트’가 전혀 모르는 곳이라는 것! 엄마는 계속 얼마 전 미국에서는 우편으로 폭발물이 배달되는 사건까지 있...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오랫동안 비어 있던 시골집에 다녀왔다. 보일러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전원을 켜자 다행히 방 안은 금세 따뜻해졌다. 뜨끈한 아랫목에 잠시 누워 있자니 지게를 짊어지고 땔감을 구하러 다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어릴 적 내 일과 중 하나는 마을 어른들을 따라 산에 나무하러 가는 것이었다. 좁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
요즘 내 일상은 취미 생활에 도움을 주는 강사님들 덕분에 활력이 넘친다. 수영반을 맡은 박미숙 선생님은 거침없는 입담과 남자 수강생들을 압도하는 실력으로 모두에게 수영의 신세계를 선사해주는 분이다. 물개처럼 자유자재로 물속을 휘젓는 상상을 하며 수업에 집중하다 보면 모두들 언젠가 거친 파도를 가르며 바다 위에 떠 있을 자신의 모습에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런가 하면 요...
얼마 전 아내는 오랜 ‘경단녀’ 생활을 청산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지 30년 만이라 아내는 몹시 감격스러워 했다. 아내의 업무는 지자체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자기 일을 갖게 된 아내가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걱정이 앞섰다. ‘30년 동안 살림만 하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얼마나 낯설고 힘들까. 게다가 누...
몇 해 전 어느 삼복염천의 정오, 그늘 한 점 없는 하남다리를 건너고 있던 내 시야로 시원한 그림 한 폭이 들어왔다. 다리 밑 서쪽 강 복판에 물모래를 거려 담는 마차 여러 대가 서 있었다. 그 불볕에 물에 들어서 일하는 인부나 말들의 존재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그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남다리를 건너 인행도에 내려섰을 때도 물모래를 실은 마차 몇 대가 길에 물을 줄줄 흘리...
“엄마, 나랑 같이 운전 배우자.” 지난해 11월, 수능시험을 치른 딸아이가 내게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자고 제안했다. 새로운 환경에 혼자 적응하기가 두려워 1종 면허를 장롱에 고이 모셔둔 내게 SOS를 쳤던 것이리라.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나와 함께하고 싶어 했다. 수능이 끝나면 친구들과 놀기 바쁠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여전히 딸은 하고 싶은 일이 생기...
‘후문 통제. 정문을 이용하세요.’ 건물 1층에 붙어 있는 안내 문구를 본 순간, 전동휠체어를 탄 내가 무슨 수로 정문 앞 계단을 올라갈지 눈앞이 캄캄했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희귀병이 찾아와 지체장애인이 된 나는 20여 년 동안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지난 12월,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에도 어머니와 함께 택시를 타고 병원에 막 도착한 참...
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향긋한 백합향이 코끝을 스친다. 마을 극단 공연이 끝나던 날 단장이 선물한 꽃다발을 가져와 물병에 꽂았더니 보랏빛 나리꽃이 활짝 피어 집안 곳곳에 은은한 향을 풍긴다. 이번 공연은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감독이 현직 연극배우다 보니 단원들의 연기 지도에만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주요 배역인 심봉사 역을 맡은 단원이 중도하차하는 바람에 한차례 큰 소...
1년 전만 해도 내 일상은 무척 단조로웠다. 정년퇴직을 해서 평일도 휴일처럼 나른했고 언제든 쉴 수 있으니 주말이 기다려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권태로운 시간만 보내던 내가 요즘에는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사랑스러운 손녀가 집에 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17개월 된 효재가 오면 집안은 그야말로 전쟁터처럼 변한다. 손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거실에 널브러진 장난감들을 주우며 ...
5년 전, 우리는 바다가 내다보이는 포항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남편과 함께하면 무슨 일이든 즐거웠다. 자동차가 없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면서도 다리 아픈 줄 모를 만큼 남편과 나란히 걷는 시간이 특히 좋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저녁, 남편이 학창 시절에 자주 가던 밥집에서 1인분에 3500원밖에 하지 않는 김치찌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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