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계시는 시아버님의 혈압이 70까지 떨어져 응급실에 실려 가셨단 얘기에 가슴이 덜컥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게이트볼 장에도 나가시고, 김장김치에 수육보쌈을 해드리면 맛있게 드시던 아버님인데 80대 중반에 접어드신 올여름부터 부쩍 기력이 떨어져 힘들어하시더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검사 결과 폐암, 췌장암 4기에 길어야 3개월 정도밖에 더 사실 수 없단 진단이 ...
2017년 7월,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췌장암을 앓던 엄마가 하늘로 떠나셨기 때문이다. 곧바로 아빠까지 혈액암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내 슬픔은 두 배로 깊어졌다. 아빠가 입원했던 병실은 적십자병원 1010호. 엄마와 이별한 슬픔을 추스르기도 전에 병실에 틀어박혀 아빠를 간호하려니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얼마 전, TV에서 낚시꾼이 커다란 방어를 낚는 장면을 보았다. 방어 한 마리가 낚시꾼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다 지쳐 아가미를 치켜들고 올라오고 있었다. 넓은 바다에서 유영하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는 비참한 모습이었다.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달리다가 세월에 낚여 수척해진 내 자신 같았다. 오늘은 방어회를 앞에 두고 옛 직장 선배와 마주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의...
‘연승아, 엄마 심봤다!’ 회사에 있는데 엄마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셨나?’ 밑도 끝도 없이 웬 산삼 타령인지 궁금했지만 워낙 업무가 바빠 답을 못했다. 그날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현관까지 나와 문을 열어주며 기다렸다는 듯 산삼 얘기를 이어갔다. “문자 봤어? 엄마 김치냉장고 탔어!” 일주일 전, 엄마와 한 가전브랜드 전시장에 가서 응모했던 ...
재작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사그리다 파밀라아, 구엘공원, 바르셀로네타 해변 등을 누비며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생각지도 못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카탈루냐의 주도인 바르셀로나는 독립 열기가 뜨거웠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에도 주말을 맞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지하철역은 이미 시위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
새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살던 지방 소읍의 오래된 아파트는 주말마다 이 집 저 집에서 보수공사가 벌어져 드릴로 콘크리트 바닥 뚫는 소리가 멈출 날이 없었다. 직장 때문에 주중에 서울에 머물던 나는 잘 몰랐지만 아내가 겪는 소음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골칫거리는 윗집의 부부싸움이었다. 한밤의 적막을 깨고 들려오는 물건 던지는 소리, 귀를 찢는 듯한 ...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개근상을 받은 날이었다. 하지만 한의사였던 아버지는 빙긋 한 번 웃으시곤 하던 일을 계속하셨다. 그깟 개근상이 뭐 그리 대수냐는 듯 칭찬 한마디 해주시지 않는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다. 사실 우리 집엔 이미 두 언니가 받아온 성적 우수상, 임원 임명장 등이 수북했다. 그중에서도 나와 열 살 차이인 큰언니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아침마...
내 스마트폰에는 흰 조개 모양의 장식 고리가 달려 있다. 누군가 어디서 샀냐고 물어봐주면 기쁜 마음으로 얼른 고리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주며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작년 이맘때 친구 네 명과 대마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뚜벅이 여행’이었다. 몸은 좀 고달팠지만 자동차로는 쉽게 지나칠 골목 풍경과 현지인들을 만나며 ‘이런 게 여행하는 맛이구나’라는...
난생처음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내 나이 서른둘. 젊다고 자만해왔던 것일까. 큰 문제는 아니라는 진단이었지만 용종이 발견됐다는 자체만으로 기운이 쭉 빠졌다. 지켜보던 남편도 불안해졌는지 “나도 검사나 한번 받아볼까?” 하고 병원행을 자처했다.검진 날, 평소 꾸준히 운동해온 터라 병원으로 향하는 남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배고파 죽겠다. 얼른 끝내고 초밥 먹으러 가자!...
시집 간 딸아이 책장에서 《애드거 앨런 포 단편선집》을 발견하고는 청소기 돌리는 것도 잊은 채 한참 동안 책장을 넘겨보았다. 어느 해 겨울 아버지께 선물 받았던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집이 떠올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은 빚보증을 서준 지인의 야반도주로 힘든 시기를 겪으셨다. 그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내려와 중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던 아버지의 고향은 마을 전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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