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터울의 아이 둘을 키우기에도 버거운 나날을 보내던 결혼 초, 또 임신을 했다. 설상가상 이번엔 쌍둥이였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들을 바라보면 미소가 절로 지어졌지만 힘든 육아에 내 몸은 늘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날도 두세 시간 간격으로 깨는 쌍둥이들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피곤해서 그런지 아침부터 단음식이 마구 당겼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여유 있게 커피와 초...
몇 달 전 아침, 여느 때처럼 아이 아침상을 차려놓고 부지런히 차를 몰고 직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조수석에 올려놓은 휴대전화가 울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도로변에 주차돼 있는 SUV 차량을 추돌하고 말았다. 다행히 상대 차에 큰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고 인명 사고도 없었다. 문제는 내 차였다. 경차에다가 연식도 오래돼 앞 범퍼가 벌어지고 한쪽 전조등마저 박살이 나버렸다. ...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샤워 시설이 없었다. 몸을 씻으려면 연탄불에 물을 데우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냉기를 견뎌야만 했다. 그런 탓에 일주일에 한 번 엄마와 목욕탕에 다녔는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나 때문에 엄마는 이른 새벽 내 손을 잡고 텅 빈 목욕탕을 찾았다. 아무리 두껍게 옷을 껴입어도 매서운 바람이 파고들던 어느 겨울, 그날도 우리는 컴컴한 새벽길을 총총히 걸어 내...
“괜찮아요. 남자아이들은 활동량이 많아 실내화가 더 빨리 망가져요.” 사준 지 한 달밖에 안 된 둘째 아이의 실내화 한쪽이 찢어져버렸다. 첫째 딸아이와 달리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둘째가 내심 걱정이었는데 선생님 말씀에 한시름을 덜게 되었다. 망가진 걸 버리고 새 걸 사주려고 헌 실내화를 들고 나온 길에 마침 어린이집 앞까지 찾아오신 친정아버지를 만났다. 일 때문에 경남 창...
아내가 출근을 하고 아이와 단둘이 남은 아침, 아이는 한참을 놀다가 어느새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이 시간에 푹 자지 못하면 아이의 컨디션이 나빠질 것이고,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쉽게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오늘 하루의 평화가 이 순간에 달려 있으니 숨소리조차 크게 낼 수 없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집을 치우고 분유와 기저귀까지 준비해두면 그제야 내게도 ...
“나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했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이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변변한 영어 점수가 없던 친구가 어떻게 미국계 기업에 들어가게 된 걸까. “영어 학원 선생님이 전화영어를 해주시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너도 같이 할래?” 마침 그 즈음 회사에서 해외 마케팅 업무를 맡게 되면서 영어 공부가 시급하던 참이었다. 이튿날 학원에 등록했고 선생님은 ...
정년퇴임을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자주 다닌다. 전국 방방곡곡 다녀온 곳이 많은데 강릉이 유독 잊히지 않는다. 경치도 좋고, 음식도 맛있지만 강릉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인상 깊었다. 그중 고마운 택시 기사님 한 분이 있다. 지난 1월, 일행 네 명과 겨울 산행을 나섰다. 태백산 눈꽃축제를 보고 오대산 선재길을 걷는 1박 2일 코스였다. 강릉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
얼마 전 그룹 ‘H.O.T.’의 재결합이 큰 화제였다. 그 시절 자칭 ‘강타 부인’이었던 내가 이 소식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하지만 재결합 콘서트에 어마어마한 인원이 신청해 경쟁률이 무려 70대 1에 달했다. 당첨자 발표 날, 하루 종일 마음 졸였지만 끝내 당첨 전화는 오지 않았다. 얼마 뒤, 현장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TV로나마 공연 모습을 보니 잠시 그때로 돌아간...
“우리 개 한 마리 키울까?” 신혼 시절 남편이 진돗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개를 싫어한 나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남편은 개에게 목욕을 시키고, 맛있는 것도 먹이며 애지중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잠결에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 보니 그 큰 개가 머리맡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었다. 그 일로 이혼 얘기가 나올 만큼 크게 싸운 뒤 남...
세 살 된 외손녀 효림이의 별명은 ‘또랑이’다.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세상의 온갖 것을 쳐다보는 모습이 귀여워 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효림이에게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곧잘 한 가지 사물을 주의 깊게 살피는 습관이 있다. 하루는 효림이가 엄마와 생애 처음 백화점으로 나들이를 갔다. 처음 보는 풍경에 신기한 게 많았는지 아이는 또랑이다운 면모를 발휘하며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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