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스스로 챙기는 거다. 어느 누구도 대신 챙겨줄 수 없다.” 엄마는 아프기 전에 건강을 챙겨야 한다며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다. 이런 엄마를 나는 잔소리꾼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엄마 말이 맞았다. 5년 전 나는 그간 모은 돈과 정교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임용고시 공부를 위해 포항 집을 떠나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3년간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번 돈...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시골 할머니 댁에 가던 중이었다. “나 편입 전형 합격했대!” 편입 원서를 낸 대학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난 뒤 형은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합격 소식을 전했다. 군 제대 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 의기소침해하는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형의 말에 우리는 이내 막막해지고 말았다. “근데 ...
2008년, 내 스물두 살 여름은 뜨거웠다. 유럽 배낭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패밀리레스토랑 서빙, 쇼핑몰 상품 포장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마음만은 벌써 유럽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세계금융 위기로 1300~1400원 하던 유로가 1800~2000원까지 뛴 상황이라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가 넉넉하지 않았다. 재정 ...
워킹맘이다 보니 아침 시간에는 출근 준비하랴, 아이들 학교 보내랴 정신이 없다. 그래도 아이들 양치질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해주려고 애썼지만 한 해 두 해가 흐르자 ‘알아서 잘하겠지’ 하고 아이들에게 맡겨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 딸아이가 이가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입 안을 살펴보니 안쪽이 까맣게 썩어 있었다. 당장 치과에 전화를 걸어 돌아오는 토요일로 예약을 ...
딸아이 책상을 정리하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앨범들이 눈에 띄었다. 자식들이며 손자들 사진 정리를 직접 하시던 아버지의 유품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중 유독 한 장의 사진에 눈길이 머물렀다. 다섯 살쯤이었을 것이다. ‘속리산국립공원’ 표지판 앞에서 나는 굳은 표정을 한 채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산에 자주 올랐는데 그때마다 어떤 산인...
나는 공주시 보건소에 근무하며 농한기가 오면 건강 체조 대회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자는 늘 여자뿐이다. 행사가 시작된 지 10년이나 되었지만 남자 어르신들은 쑥스러운지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분이 없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운동도 되고 좋은 추억도 쌓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지난해에는 남자 팀을 꾸려보기로 결심했다. 남자 노인 회장님과 열흘 동안...
“나무 모양이 이게 뭐꼬?” 집에 오는 손님마다 내 게으름을 질책하는 말 한 마디씩을 툭툭 던지는데 나는 “멋있잖아요!”라고 대꾸하곤 모른 척한다. 사실 내가 봐도 요리 꼬이고 저리 꼬이고 삐뚤빼뚤한 것이 좀 그렇기는 하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고목인 구상나무는 주목과 함께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늠름한 나무인데 우리 집 구상나무는 덥수룩한 것이 촌티가 좔좔 난다. 하지...
남다른 식욕을 자랑하는 나와 여동생 덕에 우리 집은 장을 보러 가는 횟수가 다른 집보다 많은 편이다. 그런데 엄마는 이상하게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야채는 사지 않는다. 대신 야채를 사기 위해 차를 타고 20분이나 걸리는 시장으로 향한다. 그냥 마트에서 한꺼번에 사는 게 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머쓱하게 웃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
구급대원으로 일하다 보면 별별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한번은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창문 유리와 유리를 지탱하는 나무틀이 분리돼 빠졌는데 끼우질 못하겠다며 신고를 하셨다. 집 안에 젊은 사람이 있다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홀로 지내시는 터라 전전긍긍만 하다 수화기를 드신 듯했다. 현장에 도착해서 “할머니” 하고 나지막이 부르자 반지하 집에서 허리가 구부정하고 걸...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에는 따뜻한 봄날이면 아들 내외와 어린 손녀가 찾아오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쌈짓돈을 손녀의 고사리 손에 쥐여주시곤 했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아는 아들은 받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너 주는 거 아니여. 울 아가한테 주는 거여”라고 하며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지난봄, 착실한 아들과 귀여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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