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라오스 루앙프라방 수파누봉 국립대학교 한국어학과 학생들과 함께.
1월이 되면 사람들은 마음이 바빠진다. 새로운 목표와 다짐을 실천하며 뜻깊게 한 해를 시작하려 한다. 하지만 음력 설을 쇠는 풍습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1월 1일보다 설날을 진짜 새해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내가 지내는 라오스에서는 이보다 더 늦은 4월을 진정한 새해의 시작으로 여긴다. 불교식 달력에 따라 4월 13일부터 4월 15일까지를 한 해의 시작인 ‘삐마이(새해)’라고 한다. 라오스 사람들은 이날 서로에게 물을 뿌려 더위를 식히고 나쁜 기운을 씻어내며 새로운 한 해의 복을 기원한다. 이때 ‘쏙디 삐마이’라는 새해 인사를 나눈다. 직역하자면 ‘새해(삐마이)에는 행운(쏙디)이 있길 바란다’는 뜻이다.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라오스와 인연을 맺은 뒤 현지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는 지금까지 나는 몇 번의 삐마이를 보냈다. 그중 3년 전 처음 겪었던, 정말 ‘쏙디’한 삐마이를 잊지 못한다.
한국어교육 봉사단원으로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파견된 나는 즐겁게 삐마이 행사에 참여했다. 열정적인 새해 물놀이의 여파로 늦잠을 자고 일어난 연휴 마지막 날,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그런데 내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루앙프라방에서는 출퇴근뿐만 아니라 마트, 식당 등 어디든 자전거가 아니면 갈 수 없어 난감했다. 라오스어로 검정을 뜻하는 ‘씨담’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줄 만큼 애지중지했던 터라 낙담이 컸다.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주인에게 CCTV 영상을 요청했다. 영상 속엔 누군가가 내 자전거를 툭툭 건드리다 안장에 올라타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바퀴 잠금장치를 풀지 못한 그는 완력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CCTV 영상을 우리 반 학생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올렸더니 당장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라고 난리였다. 사실 외국인인 내 이야기에 현지 경찰이 얼마나 귀 기울여줄지 의문이 들어서 망설이고 있던 차에 기꺼이 함께 가주겠다는 학생이 있어 용기를 냈다. 그렇게 오토바이를 몰고 와준 ‘너이’라는 학생 뒤에 타고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너이가 소리쳤다. “저거 선생님 자전거 아니에요?” 경찰서 앞 공터에 내 자전거와 비슷한 검은색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가 확인해보니 흠집이 똑같은 내 씨담이가 맞았다.
경찰관에게 들은 내막은 놀라웠다. 훔친 내 자전거를 끌고 가던 도둑은 잠금장치를 풀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 여파로 잠금장치의 열쇠 구멍은 만신창이가 돼있었다. 계속 시도하다 지친 도둑은 결국 길거리에 자전거를 버려두고 가버렸다. 마침 그 모습을 목격한 근처 식당의 종업원이 주인 없는 자전거를 경찰서에 갖다준 것이다. 경찰서까지 1km가 넘는 먼 거리를 잘 굴러가지도 않는 자전거를 끄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말이다. 도난당한 자전거가 경찰서로 오다니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씨담이를 되찾은 건 단지 우연한 행운이 아니었다. 집주인, 학생들, 식당 종업원 등 이웃의 친절과 도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좌)자전거를 되찾았던 경찰서.
(우)나와 함께 라오스를 누비던 자전거 ‘씨담이’
라오스 루앙프라방 수파누봉 국립대학교 한국어학과에 파견되어 1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라오스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 많았다. 그들은 타지에서 온 이방인인 나를 환대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강의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은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방학 중에는 한 학생이 부모님의 농장에 초대해줘 학부모님이 정성껏 요리해주신 닭요리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낯선 라오스 생활에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항상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발 벗고 나서줬다.
그 선의에 보답하고자 어떻게 하면 더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 난 항상 고민했다. 손수 ‘한-라 사전’을 제작하거나 한국어 어휘 교수법을 담은 자료를 작성한 것도 학생들을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다.
내가 떠나는 날에 학생들은 기차역까지 배웅을 나와 선물과 편지를 주었다.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나는 다짐했다. 다시 라오스에 돌아올 것을. 그날부터 내 가슴속에 라오스사무소 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목표가 새겨졌다. 봉사단원들의 조력자인 코디네이터는 단원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람차고 성공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공부가 필요했다.
나는 한국에 귀국해 코이카 글로벌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라오스어를 꾸준히 복습했다. 그리고 마침내 봉사활동이 끝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4년 7월에 현지 코디네이터로 다시 라오스에 돌아왔다.
코디네이터로서 바쁘게 지내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 라오스 사람들과 또다시 작별해야 할 시간을 코앞에 두고 있다. 2026년 6월이 되면 코디네이터 계약이 종료된다. 하지만 섭섭하지만은 않다. 라오스에 언제든 다시 돌아올 거라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봉사단원, 코디네이터 다음에 나는 어떤 역할로 이 나라를 방문하게 될까.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라오스에서 또다시 힘차게 새해 인사를 건넬 날을 고대한다.
“쏙디 삐마이!”
글 · 사진 이원재
(코이카 라오스사무소 코디네이터)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담는 국제개발협력 사업 참여 후기 ‘세상을 끌어안는 손’은 인류 공동번영과 세계평화 증진에 기여하는 대한민국 개발협력 기관,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KOICA)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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