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DIARY
한 해의 시작은 조용히 찾아오는 듯 보이지만 나는 해마다 격변의 새해를 마주한다. 새롭게 해야 할 일과 이루고 싶은 목표들이 각기 다른 모양의 파도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만으로 마흔하나를 맞이하는 올해는 변화의 물결이 더 높게 느껴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마흔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게 전해진다. 더 이상 어른 흉내를 내는 나이가 아니라 진지하게 삶을 책임지고 꾸려가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에도 나는 삶을 잘 꾸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본업인 디자이너 일을 하면서 문풍지를 만드는 부업을 병행했고 주말마다 물류 센터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쓰리잡’을 이어왔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보니 삶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지치게 하는 방향으로만 흐르는 듯했다. 몸이 먼저 고장 나고, 그다음엔 마음도 따라 흔들렸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노동이 끝난 뒤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무겁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한 피로가 몰려왔다. 피곤함에 바로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침대에 누워도 눈을 감으면 이런저런 잡념과 걱정이 잠보다 먼저 밀려오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편하고 즐겁게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능력이 부족해 이렇게 고생하나 싶어 우울하기만 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왜 나한테만 이렇게무거운 삶의 무게가 주어진 걸까. 새벽에 혼자 문풍지를 붙이며 이런 소용없는 질문들을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었다.
테이프 절단기에 손가락이 깊이 베이고, 양쪽 어깨는 돌덩이처럼 굳어갔지만 몸보다 더 아팠던 건 마음이었다. 문틈으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올 때처럼 세상에 대한 서운함과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다그침이 마음의 틈새로 시리게 들어왔다.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에게 연이어 닥친 불행들은 나를 더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몇 차례에 걸쳐 암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수술이 필요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이고, 어머니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하단 진단을 받았지만 경제적 여건 때문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계신다.
부모님이 겪는 괴로움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노동의 강도보다 더 육중하게 나를 짓누른다. 자식으로서 무력하기만 한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부모님에게 죄송해 유난히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새벽이었다. 평소처럼 문풍지를 붙이던 중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웃풍을 막아주는 이 작은 종이처럼 나도 내 시린 마음에 바람막이를 하나 마련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만든 종이로 누군가의 소중한 공간이 따뜻해질 때처럼 내 마음에도 훈기가 돌 것이란 희망이 조금씩 생겼다.
일에 지쳐 나 자신을 질책하며 보냈지만 분명 내가 부족해서 삶이 버거운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있을 테고 그때마다 모두가 자신의 탓으로 돌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만 바보처럼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지 말아야겠다. 특별한 성공이나 대단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원망과 자책을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부터 해야겠다는 결심이 앞서는 새해의 문턱이다.
새 마음으로 책상 위에 오래된 소망 하나를 적어두려 한다. 오랫동안 글을 잊은 채로 살다가 요즘에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 써서 작은 공모전에서 한 번쯤 수상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거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이리저리 흔들렸던 날들 사이에서 글은 나를 살게 해준 유일한 버팀목이었기에 놓고 싶지 않다.
새해에는 어두운 감정들이 비집고 들어오지 않도록 내 마음에도 단단히 문풍지를 붙여놓을 것이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리하여 마음의 온도가 조금만 더 올라가도, 나는 하루를 견딜 용기를 충분히 얻을 것이다.
유수영 2026년 새해에 만 41세가 되는 ‘N잡러’입니다. 여러 일을 병행하는 일상이 고될 때도 있지만 직업은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친구’이자 ‘꾸준히 내면을 성장시켜 주는 바탕’이라 여기며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틈날 때마다 뜨개질로 수세미를 만들거나 이동 중에 잠깐씩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기분을 환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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