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모든 걸 넉넉하게 받아주고 용납해주는 지친 마음들의 피난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알면서 작은 바람에도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순간이면 나는 푸릇푸릇한 물결의 품으로 파고든다. 고운 모래밭에 서서 끝을 가늠하기 힘든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머릿속에 똬리를 튼 염려가 작디작게 느껴지곤 한다. 다행히 지금 사는 곳에서 바다가 멀지 않다. 차로 세 시간여를 달리면 멕시코...
경북 안동은 낙동강을 도포처럼 두르고, 병산(屛山)을 삿갓처럼 쓴 고장이다. 수려한 강산에 깃든 옛 선비들의 깊고 푸른 도량을 마음속에 새기며 꿈 하나를 얻었다. 아름다운 빛이 비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풍경은 잠들지 않아도 꿀 수 있다. 햇빛이 사그라지고 달빛이 비치면 우리에겐 유식(遊息)의 시간이 찾아온다. 종일 종종거린 발걸음이 차분해지고 긴장감으로 달아올랐던 상열이 시...
그림 · 모조핀 9월의 페어링 지장수 까메오 막걸리 + 들기름 막국수 ‘지장수 까메오 막걸리’는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낙천 탁주제조장에서 만드는 술입니다. 동해 약천골 지장수를 이용해 만든다고 하는데요, 저는 처음에 ‘정제수’를 잘못 표기한 줄 알았답니다. 대체 지장수가 뭔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5억 7천만 년 전에 형성된 황토 암반층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물’이라네요...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기간 상설 전시(무료 예약제)장소 서울 서초구 헌릉로8길 6문의 02-574-5175 좋은 노래는 마음을 울린다. 화려한 기교 없이 목소리의 떨림만으로 감정을 건드리고, 팍팍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가 되어준다. 강아솔의 , 선우정아의 같은 곡들이 나에게는 그렇다. 좋은 노래에 관한 기준은 분명하지만 정작 ‘소리’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음질이 깨지지만 않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런 내가 좋은 소리의 기준을 가지게 된 건 오디오 박물관에 다녀온 뒤부터였다. 서울 서초구에 자리한 ‘오디움’은 19세기 축음기와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생산된 희귀한 음향 장비를 소장한 세계 최...
“하이? 마이 네임 이즈 A. 하우 아 유?” 언니를 처음 만난 건 30여 년 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한 어학원 휴게실에서였다. 그날 난 영어 레벨테스트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뒤 쉬는 시간이 되자 교실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파란 눈의 유럽 학생들, 까만 머리의 동남아 학생들, 수줍고 예의 바른 일본 학생들 틈에 한국 학생들도 더러 섞여있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달리는 중이다. 천변, 공원 등 주변 곳곳에서 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러닝 열풍인 요즘, 대한민국 남자 100m 신기록을 세운 김국영 선수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항상 앞만 보며 단거리를 질주하던 그도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며 특별한 러닝을 시작했다. 육상선수 김국영 2010년 6월 전국 육상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대구 스타디움, 남자 100...
어느 저녁, 우연히 시인 C를 만났다. 알고 지낸 지 어느덧 스무 해가 다 되어가는 C와 나는 대학 동문이다. 굳이 학번을 따지자면 내가 선배이나, 그가 나이도 열 살 남짓 윗길인 데다 많은 부분에서 존경하는 사람이라 형이라 부르고 선배라 여기며 가깝게 지내고 있다. C와 나누는 대화는 늘 즐겁다.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화법을 나는 ...
3년 전 여름, 결혼하자마자 아내와 별거 아닌 별거를 하게 됐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Fiji) 사무소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보통 파견국에 가족이 처음부터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낯선 외국 생활이라 우선 내가 먼저 터를 닦아 놓은 뒤 아내는 6개월 뒤에 합류하기로 했다. 내가 근무하는 코이카 피지사무소가 위치한 수도 수바(Suva)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다. 수도라...
10여 년 전 직장에서 만나 깊은 우정을 쌓아온 선배와 오랜만에 안부를 주고받았다. 요즘 선배의 최대 관심사는 곧 고등학생이 되는 첫째의 교육이었다. “우리 부부처럼 사교육하고 담쌓은 부모도 흔치 않을걸? 대부분 애들은 학교 끝나면 곧장 학원에 가서 밤 11시나 돼야 집에 온다더라. 나도 조만간 보내야지. 근데 난 지금이 너무 좋아.” 부부가 모두 음악을 전공한 선배네 저녁...
나는 우표 수집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네팔 우표는 수집가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무수히 소장하고 있다. 40여 년 전에 학술 대원으로 처음 네팔 땅을 밟으면서 네팔을 소개하는 글에 삽화로 활용하기 위해 모았던 것이다. 당시 몇몇 등반가들이 네팔로 히말라야 원정을 떠났다. 이들의 여행기를 보면 험준한 산을 오르는 고단함과 정상에 올랐을 때의 소회가 대부분이었다. 반대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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