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의 다섯 친구들에게 날이 무척 더워졌네요. 계절의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봄은 어디서 끝나고 여름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나 세상을 향해 질문을 건네게 돼요. 더불어 ‘나만의 계절 명명법’을 발견하고 싶어집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에요. 저는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시가 한 편 있는데요. 무심하게 하루하루를 살다가도 불현듯 ‘레몬향이 거미줄처럼 엉킨...
작년 가을, 스위스 비엔(Bienne)으로 가는 2차선 도로에서 나는 한숨을 쉬며 렌터카의 핸들을 돌렸다. 길 오른편에 있는 중고품 가게를 본 뒤였다. 처음에는 ‘이제 저런 곳에는 그만 가도 되잖아’라는 생각 때문에 가게를 보고도 지나쳤다. 하지만 룸미러 뒤로 점점 멀어지는 가게를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평생 저 가게에 가볼 기회가 없을 텐데 이대로 지나치면 후회하지 않을...
반려동물이라 하면 보통 개나 고양이처럼 친숙한 동물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반면 쉽게 상상되지 않는 동물 중 하나는 바로 ‘닭’이다. 아파트에서 반려닭 두 마리를 키우는 고등학생 이효현 양은 닭이 청결하고 교감이 잘 되는 반려동물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하루(만 2세, 암컷) ♥ 오늘(만 2세, 수컷) 1. 둘이서 바나나 반 개를 해치울 만큼 몸집에 비해 먹성이 ...
1987년 3월호 충주댐이 완공된 이후 목벌, 포탄, 한수 일대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택시로 7, 8분 만에 산의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 보니 과거의 목벌은 사라지고 마치 웅크리고 앉아 잠든 강아지의 등을 연상하듯, 골이 많고, 굽어있다. 산등은 강아지풀처럼 부드럽고, 호수의 수면은 태고의 침묵처럼 엄숙한 느낌이다. 그 청태(靑苔)빛 수면에서 물안개가 신비의 기운처럼 일어...
그림 · 손승배 날씨가 제법 여름다워졌다. 이 계절이면 사람들은 땀 흡수가 잘되는 시원한 원단의 옷을 찾아 헤매고 하나라도 덜 입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난 체질상 더위를 잘 타지 않아 여름에 강하다. 기온이 35℃가 넘는 날씨에 조끼까지 입은 정장 차림으로 야외촬영을 해도 이마에 땀 한 방울 맺히지 않는다. 동료 배우들이 휴대용 선풍기와 ...
그곳에 갈 때면 이 세상에 없는 계절로 초대받는 기분이다. 초록 더께가 여울진 아름드리나무 터널로 밀물처럼 스미는 따사로운 햇살, 숱한 세월에 빛바랜 벽돌집들이 추억을 더듬는 한갓진 골목에 부는 남실바람, 문턱이 닳도록 정겨운 소식을 실어 나른 우체국에 진동하는 그리움의 향내, 그리고 이 모든 걸 평온하게 감싸는 너른 들판. 그 영원의 풍경 속에 나만의 작은 천국이 있다. ...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을 미각이 망가진 변태로 몰아가는 광풍이 온라인을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중립이었던 나는 죄없이 과하게 두들겨 맞는 민트초코가 불쌍해서 ‘민초단’을 다짜고짜 자처했다. 코를 막고 인상을 쓰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의 반응에 괜한 반감이 들어 생전 먹지도 않는 취두부의 애호가가 되기로 결심한 적도 있었다. 두리안은 또 어땠나. ‘천국의 ...
인간의 청력으로 듣지 못하는 소리 중에서 단 한 가지를 들을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하고 싶은가. 다신 만나지 못하는 그리운 이의 음성? 반려동물의 속마음? 이슬방울이 풀잎을 구르는 소리? 전남 담양의 녹음 짙은 길을 걸으면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생긴다. 앞쪽에 달린 털 뭉치를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여 사용하는 음향기기. 꼭 권총처럼 생긴 이 장치로 말하자면, 작은 소리를 크...
“어른도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야.” 작년 이맘때, 지인이 책 한 권을 건네며 해준 말에서 ‘그림책’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콕 박혔다. 그림책이라니, 어린 시절 이후로 잊고 지낸 단어였다. 선물 받은 그림책을 펼쳐보았다. 넓은 여백을 보는 순간 숨통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에 한 권씩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림과 글을 훑기만 했다. 그러다...
이해인 수녀가 오리여인에게 1 정겨운 이야기가 담긴 오리여인의 그림을 보면 늘 부럽고 나도 그림을 잘 그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글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기 때문이지요. 6월의 편지는 잘 받았어요. 이사도 잘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나는 약 보름 동안 본원 밖에서 몇 차례 강의를 하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성당에서 만난 청중 중엔 더러 어린 친구들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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