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노석미 십 대 후반, 우리 집 거실 서가에는 막내 고모가 월부로 사들인 ‘○○문화문고’ 시리즈가 꽂혀 있었다. 백여 권의 책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던 책이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인간실격·사양》이었다. 표지에 일본식 발음이 따로 병기되어 있지 않아서 오래도록 나는 그 작가를 ‘태재치’로 기억했다. 대학에 가서 태 씨 성을 쓰는 친구를 만났을 때 태재치와 ...
성북동 최순우 옛집 한옥의 멋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다. 뒤란으로 가는 좁은 길의 단정함이라던가, 매끈하게 잘 빠지다가도 살짝 흐트러진 부분이라던가, 툇마루에 내리쬐는 반짝반짝 햇살 같은 것이다. 그것은 오래된 시간 같은 것이고 정성스러운 손맛 같은 것이다. 감각으로 경험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한옥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곳, 작고 낮은 방에 오롯...
대학생 전은상(전북대, 21) 씨는 매일같이 두통에 시달렸다. 학점 관리에, 취업 준비만으로도 벅찬데 친구들과의 사이마저 삐걱거렸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학점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되다 보니 마음을 터놓기가 힘들어요. 성적이나 취업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괜히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말을 아끼게 되죠.” 많은 대학생들이 좁은 취업의 문 앞에서 친구, 선후배...
“너무 어려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님과 남한으로 넘어왔대요. 하지만 모든 게 낯설고 사는 게 생각대로 되지 않자 부모님은 심하게 다투실 때가 많았고 결국 이혼을 하시고 말았어요. 아빠가 절 책임지겠다고 하셔서 고아 신세는 면했지만 진짜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어요. 하루종일 일 나간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
1980년대, 뽀빠이화원은 서울 효자동에서 가장 인기 좋은 동네 사랑방이었다. 어버이날 같은 대목에도 꽃값을 올려 받기는커녕 정량보다 송이를 더 얹어 다발을 만들어주는 꽃집 주인 송용현 씨의 인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손을 꼭 맞잡고 살갑게 안부를 챙기는 아내 김금순 씨 앞에서는 모두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30년이 흐른 지금은 부부의 막내딸 수현(29) 씨가 화원을...
전남 장흥 진목마을 “이번에는 너 혼자도 아니고… 하룻밤이나 차분히 좀 쉬어 가도록 하거라.” “오늘 하루는 쉬었지 않아요. 하루를 쉬어도 제 일은 사흘을 버리는 걸요. 찻길이 훨씬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기선 아직도 서울이 천릿길이라 오는 데 하루 가는 데 하루…” 1977년 겨울에 발표된 이청준의 소설 눈길은 어머니와 아들의 실랑이로 시작한다. 모처럼 왔으니 조금 더 머물고 가라며 붙잡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아들은 한사코 걸음을 재촉한다. 서둘러 돌아가려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오다가다 이틀을 허비한다는 핑계였다. 그만큼 장흥은 멀고도 멀었다. 찻길은 더 나아졌을 법하지만 여전히 정남진(正南津)의 고장은 멀기만 하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장흥터미...
일상에 쫓겨 멀리 떠나고 돌아오는 일이 번거로운 이들에겐 도시 곳곳에 보물찾기하듯 숨어 있는 문화유적을 돌아보는 산책 코스가 제격이다.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에서 송월길을 지나 독립문역사거리로 내려오는 짧은 코스는 일상을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걷기 좋은 도심 산책길이다. 송월길 산책을 알뜰하게 즐기려면 먼저 근처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부터 둘러보는 게 좋다. ‘아는 ...
예술가들의 주거지이자 활동 공간이었던 홍대 땡땡거리. 서울 신촌 성결교회에서 홍대 산울림극장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이 있다. 홍대 땡땡거리다. 예전에는 이 길의 중간에 경의선 철길이 있었다. 하루에 몇 번씩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그때마다 건널목 차단봉이 내려오면서 땡땡땡 종이 울렸다. 1990년대 무렵, 홍대 땡땡거리와 산울림 극장 일대에는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아이슬란드를 덮쳤다. 주가가 폭락하고 대형 은행들이 잇달아 무너지면서 그야말로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놀랍게도 그해부터 백만 톤이 넘는 고등어가 아이슬란드 영해에서 잡히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고등어 떼가 북극지방으로 향한 결과였다. 생선을 가루가 될 때까지 구워 어분(魚...
아이돌 음악이 가요시장을 점점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각종 음원 사이트 차트의 상위권은 아이돌의 신곡이 점령하고, 공연시장은 아이돌 그룹의 대형 콘서트 위주로 돌아간다. 아이돌이 주름잡는 국내 대중가요 시장에서 최근 2,000석 매진을 기록한 밴드그룹 ‘아이엠낫’의 단독콘서트는 단연 화제였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틈에서 아이엠낫이 팬층을 두텁게 쌓아올린 비결은 무대 장악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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