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꽃샘추위가 찾아왔던 3월의 어느 날,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엄마가 이상해. 배가 너무 많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아.” 걱정스런 동생의 전화에 엄마가 최근 건강검진을 했는데, 폐가 안 좋으니 큰 병원 가서 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다는 얘기가 떠오르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밀 검사를 받아보자고 해도 엄마는 별일 아닐 거라고 말하며 한사코 병원에 ...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카페에 특별한 글이 올라왔다. 남편 생일인데 어렵게 살아 선물할 형편이 못 된다며, 여기 공개하는 남편의 전화번호로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놀라운 것은 글 마지막에 적혀 있던 그녀의 남편 전화번호로 수십 명이 축하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날 저녁, 그녀는 남편이 아주 즐거워했다며 감사의 글을 올렸다. 그 뒤 비슷한 글이 심심찮...
몇 달 전,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월급 통장을 보여달라고 했다. 꼼꼼하고 알뜰한 아내를 믿었기에 평생 월급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던 나의 갑작스런 요구에 아내는 좀 당황한 듯 보였다. 장롱 깊숙한 곳에서 월급 통장을 가지고 온 아내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이번에 월급 15만 원 오른 거 알고 있지? 그 돈은 내 이름으로 적금 통장 만들어서 저금하면...
지난해 ‘민들레문학상’에 시를 투고했는데 수상 소식을 알리는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들뜬 마음으로 시상식에 입고 갈 옷을 살폈다. 작은 누나가 사준 검정 재킷이 눈에 들어왔지만 음식을 먹다 흘렸는지 이물질이 묻어 있었다.다음 날 어머니에게 세탁소에 옷을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어머니가 찾아오신 옷을 살피며 얼룩이 잘 지워졌는지 확인하려는데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일요일 아침, 30년 지기 직장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내가 손이 떨려서 도저히 핸들을 못 잡겠는데 단양까지 운전 좀 해줄 수 있어?” 아무런 사정 이야기도 없이 침통한 목소리로 운전을 부탁하는 전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단양은 친구의 고향이 아니던가. 혹시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아닐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
올봄 피아노 레슨을 하러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정류장 옆에서 건미역, 건다시마 등을 늘어놓고 파시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여든도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일이 고된지 꾸벅꾸벅 졸고 계실 때가 많았다. 봄 햇살이 따사로운 그날도 할아버지는 여전히 졸고 계셨다. 바닥이 딱딱해서 엉덩이가 배기진 않을까, 허리는 괜찮을까 걱정되어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나라...
우리 남편의 나이는 쉰 살, 어느새 지천명이다. 남편은 십여 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남성 커트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오십을 코앞에 둔 어느 날, 갑자기 이발에 꽂혀 인터넷 강의를 듣고 학원에 다니더니 회사를 그만두고 덜컥 가게를 차려버린 미용사 남편. 아무리 백 세 시대라지만 쉰이 코앞인데 난데없이 미용기술자라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예전부터 손재주가 ...
지난 설 연휴 때, 울산 큰아버지 댁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꽉 막히는 고속도로 위에서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차 안에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팔 할은 시집살이하던 엄마의 고생담이었다. “너희 할머니는 상 다 차려놓고 진지 드시라고 해도 십 분이 넘어서야 방에서 나오셨어. 할아버지가 뭐하다 이제 나오느냐고 하시면 토라지셔서는….” 성격이 극과 극이었던 할...
일요일 아침, 몸이 찌뿌둥하여 동네 사우나에 들렀다 오는 길에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애들이 출출한가 봐요. 집에 올 때 김밥 몇 줄 사 오세요.’ 거리로 나와 먼저 눈에 띈 김밥 집에 들어갔다. 가깝기도 했지만 간판 밑에 ‘엄마 정성이 듬뿍’이라고 쓰인 문구가 왠지 모르게 맘에 들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자궁암을 앓아 자주 몸져누우셨고, 결국 내가 열한 살이 되...
3년 전 교장으로 부임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권했다. 솔선수범을 해야 할 것 같아 나도 뛰기 시작했고, 어느새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 하프코스 마라톤 대회에도 네 번이나 참가했다. 지난 4월에는 ‘제15회 호남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처음 도전하는 풀코스 경기라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한 뒤의 뿌듯함을 상상하자 가슴이 두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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