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 위베르 멩가렐리 국내 첫 소개!
위베르 멩가렐리는 프랑스 문단에서 이 시대의 꼭 필요한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부자간의 이야기가 대부분 많이 나오며, 작가가 청소년시절에 겪었던 성장 과정이 소설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이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소년
소설 <마지막 눈>은 병든 아버지를 사랑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그 사랑이 너무도 컸기에 말로 담을 수 없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이야기다.
철도에서 일하던 소년의 아버지는 병석에 눕게 되면서부터 가장으로서의 위치는 물론,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소년은 근처 양로원에서 노인들의 산책을 도와준 대가로 받은 몇 푼의 돈을 생활비로 내놓고, 사랑이 아쉬운 엄마는 밤이 되면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외출을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노점상에게서 발견한 솔개 한 마리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던 소년은, 그 솔개를 사기 위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자 남들의 부탁을 받고 새끼 고양이들이나 개를 죽여주는 끔찍한 일까지 맡아서 하게 된다. 드디어 원하던 솔개를 가지게 된 소년은 밤마다 아버지에게 솔개사냥 얘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부자간에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장이 열린다. 두 사람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같은 감동을 공유한다. 그러나 병마를 이겨내지 못한 아버지는 세상을 뜨고, 소년이 그토록 애절하게 가지고 싶었던 솔개는 이제 한낱 의미 없는 새로 여겨질 뿐이다. 임종을 맞은 아버지의 침대 밑에서 소년은 아마도 아버지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일지도 모르는 낡은 구두에 윤을 내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부자간의 사랑을 다룬 수많은 소설들 중의 하나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읽는 이에게 남다른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소년과 아버지 사이의 도치된 부자관계에서 오는 가슴 뭉클함 때문일 것이다. 소년에게 아버지는 자신이 돌봐 줘야 할 아들과 같은 존재이고, 아버지에게 소년은, 아들에게 잠자리에서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잠 못 이루는 병든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솔개 잡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다. 심지어 엄마의 밤 외출을 비난하는 순간에도, 소년의 뇌리에는 엄마의 부정보다는, 밤에 집을 나서는 엄마가 어두운 복도에서 불을 켤 때 내는 스위치 소리에 아버지가 느끼는 고통이 더 절실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처럼,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소년의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이유는 아마도 약한 것이 강한 것을 보호하려는 그 처절한 동물적인 노력을 소년에게서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무릅쓰고,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는 강한 의지로 발현되었을 때, 그를 바라보는 이가 느끼는 감동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가족에 대한 사랑에 동서가 있을 수 없고 고금이 다를 수 없다.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소리 없이 벌어진 이 사소한 드라마가 마치 겨울 끝자락에 만나는 마지막 눈처럼 우리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아버지의 아버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수많은 가정들이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 설 자리를 이른 소년의 아버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내면적 작가의 시적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
프랑스 언론에서는 멩가렐리를 가리켜 평온하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평한 바 있다. 그가 소설을 통해서 만들어 내는 비극적 힘은 바로 그의 내면화된 시선에 있다.
작가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을 묘사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들의 작은 몸짓들, 조각난 대사들, 그들이 바라보는 풍경과 사물들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존재와 심리를 유추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는 소년의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주위에 친구는 있는지, 학교엔 다니는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심지어 밤마다 집을 나가는 엄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만 짐작할 뿐이다.
홀로 내면적 대화를 나누는 소년은 일종의 자폐적 증세를 보인다. 소년의 밀폐된 언어가 독자의 상상력과 만나면서, 우리는 1인칭 소설들이 보여주는 그 내면화된 관점과 화법의 정수를 경험한다.
어디에선가 소년은 말한다.
“때로 내가 정말로 했던 일이든, 아니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이든, 어떤 것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다보면, 결국 똑같은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것에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소년의 내면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내재화 된 언어와 그를 받치고 서 있는 금속처럼 차고 매끄러운 문체는 문학적으로 완성된 작품의 전형을 보여준다.
간결한 문체의 힘
<마지막 눈>의 문체적 특징은 짧은 호흡의 단문에서 오는 긴장감에 있다. 극도로 절제된 묘사와 한숨 소리처럼 짧게 이어지는 대사가 마치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다. 1인칭 주인공의 관점은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한정된 시각 속에 포착된 사람과 사물들을 제시한다. 거기엔 어떠한 장식도 겉치레도 강요된 감동도 없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대사는 마치 독백처럼 들린다. 그들은 토막난 말을 뱉어내고, 주저하며 말을 더듬는다. 침묵의 변경에 서있는 그들의 언어는 의사전달의 도구라기보다는 물리적으로 응집된 하나의 사물처럼 보인다. 그 외로운 사물은 자폐증에 가까운 침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년의 고독을 드러내는 가장 정확한 형식일 것이다. 문체에 대한 멩가렐리의 집념은 작품 곳곳에서 마치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형식을 예술적 모험의 대상으로 삼아, 오직 문체의 힘만으로 서있는 소설을 쓰겠다는 서구문학의 꿈과 그 오랜 전통을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독자들은, 카뮈의 <이방인> 이후에 볼 수 없었던 소설 문장의 간결한 건조체의 매력을 <마지막 눈>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될 것이다.
글보다 섬세하고, 삶의 향기가 배어있는 김세현의 크로키 5점 수록!
그림책 <만년샤츠>로 어린이 책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모랫말 아이들> <아름다운 수탉> <부숭이는 힘이 세다> <내 이름은 태양 꽃> <사금파리 한 조각> 등 어린이 창작동화 그림에 발 맞춰오고 있는 화가, 김세현. 그는 그림동화에 주력을 쏟으면서 2002년 가을, 소설 <홍어> 작품에서도 기다림의 끝이 떠남이라는 설정을 작가만의 절제된 감성과 선으로 소설의 이미지를 잘 살렸다. 이어 소설로는 두 번째인 <마지막 눈>에서도 작가만의 섬세한 선과 그림의 기법으로 글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것이다.
위베르 멩가렐리 Hubert Mingarelli 는1956년 프랑스 로렌 지방에서 태어났다.
17세에 학업을 포기한 그는 해군에 입대하여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3년 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이제르 지방에 정착한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글쓰기에 전념했다. 1991년 <곡예사의 비밀>이래, <바람소리>, <나무>, <모래의 삶>, <도둑맞은 빛> 등의 작품을 차례로 발표하여 프랑스 문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2000년에 쓴 <마지막 눈>은 <조용히 흐르는 초록빛 강>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말없이 오가는 애틋한 감정을 그리고 있다. ‘조용하고 비극적인 작가’로 알려진 멩가렐리의 글은 마치 한 잔의 진한 커피처럼, 읽는 이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글과 삶이 보여주듯, 현재 그는 1,700미터 고지의 깊고 험준한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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