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버지
소설 <조용히 흐르는 초록빛 강>은 인생에 실패한 아버지와 그에게 아버지의 자리를 돌려주고 싶었던 한 아들의 이야기다. @end
사람들은 프리모의 아버지를 두고 실패한 인생이라고들 한다. 일하던 양수기 공장에서 실직하면서부터 프리모의 아버지는 영락의 급경사를 구르기 시작한다. 사용료를 내지 못해 집안의 전기가 끊어지고, 사용하던 레인지마저 몇 푼의 돈을 위해 팔아 버린다. 빚쟁이들을 피해서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일하던 농장에서 훔쳐 온 토마토를 먹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그 허드렛일마저 잃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 완전히 망가진 인생이 되어 버린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 소년의 엄마도 아마 그런 빈곤과 모욕적인 삶이 싫어 그들 곁을 떠났을는지도 모른다.
재기의 가파른 비탈길을 기어오르기 위해 빈털터리 부자가 짜낸 사업계획은 마당에 피어 있는 장미꽃 씨앗을 받아, 빈 병에 심고 큰 장미 나무로 키워서 파는 것. 의지할 곳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기도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사업에 투자된 것이라곤, 너그럽게 무료로 주어지는 물과 흙과 하느님의 은총뿐. 하지만, 그들이 공들여 키운 것이 장미가 아니라 잡초였음이 밝혀지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투자했던 그 비참한 사업은 그렇게 무너져 버린다. 백 개의 화분에 담겨 있던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 사라지던 날, 아버지는 동업자인 아들을 데리고 난생 처음 제대로 된 외식을 하러 식당을 찾는다. 아버지는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식당에서 만난 여자에게 돈을 주어 노래도 시키고, 아들에게는 두 번씩이나 달콤한 후식을 사준다.
매일 아침, 그리고 잠자기 전, 아들이 기도를 했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아버지, 아들이 먹은 후식의 맛이 어땠는지 여러 번 확인하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을 앞에 두고 그 가난한 사업을 전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남의 돈을 떼어먹고, 일하던 농장에서 토마토를 훔치고, 심지어 성당에 들어가 양초를 훔쳐 내오던 아버지가 그래도 아들 앞에서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보존되어야 할 '아버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자라서 아버지가 되고, 그가 낳은 아들이 다시 아버지가 되어도 결코 지워져서는 안 될, 아버지의 자리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리는 자식을 짓누르는 권력이 아니라, 고단한 삶에 지치고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방황하는 아들이 언제나 기댈 수 있는 크고 강한 사랑의 힘을 뜻한다. 프리모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이 땅에서 눈을 감는 날까지, 마치 지워지지 않는 징표처럼 지니고 살아가야 할 영원한 아버지의 모습을 선명하게 남겨 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듯 비록 인생에 실패한 아버지이지만, 그것이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잡초뿐인 백 개의 화분과 함께 그들의 꿈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고 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이번에는 장미 씨앗이 아니라 다른 꽃씨를 심어 보자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그들의 미래는 밝다. 사랑만 건재하다면, 백 개의 화분 안에서 어떤 꽃이 피어나든 상관없다.
*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자리를 돌려주고 싶었던 아들
우리는 소년 프리모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나이가 몇 살인지, 학교는 다니는지, 친구들은 있는지. 그리고 엄마가 그의 곁을 떠난 이유도 우리는 모른다. 자주 다니는 길에서 만난 검은 개 한마리가 다가왔을 때, 소년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감동적인 우정이 자신과 개 사이에 맺어질 것이라 상상한다. 하지만, 개는 소년의 다리에 붙어 용두질을 하고, 겁에 질린 소년은 울음을 터뜨린다. 그 뒤로부터 소년은 개를 피해서 풀이 우거진 풀숲에 터널을 파고 매일 그 속을 산책한다. 멩가렐리의 또 다른 소설 <마지막 눈>의 주인공 소년처럼 자폐적인 성향을 보이는 프리모는, 그 숲 속 터널에 예사롭지 않은 집착을 보인다.
검은 개를 피해 숲속 터널로 돌아가는 소년의 모습에서 어떤 이는, 어른들의 험한 삶에 상처를 받은 소년이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상징적인 독서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과 모성의 상상적 연계성을 더듬어 소년이 소설 속에서 초록빛 강을 끊임없이 반추하는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간접적인 그리움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이 소설이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는 아버지에 대해 결코 존경심을 버리지 않는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그 맹목성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의 보편적 기준으로 볼 때, 정말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소년의 아버지는 어린시절 송어를 맨손으로 잡는 재주가 있었고,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 재주가 소년에게는 거의 숭배의 대상이 되다시피 한다.
소설 속에서 소년은 말한다.‘사람들은 우리 아버지를 두고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할 때 우리 아버지가 푸른 송어를 맨손으로 잡으셨던 얘기는 쏙 빼놓았던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그려 보았다. 조용히 흐르던 초록빛 강과 그 안에서 헤엄치던 푸른 송어를.’
말과 대결하는 침묵의 언어, 그 감동적인 문체의 힘
프랑스 문단에서‘가장 조용하고 비극적인 작가’로 알려진 멩가렐리의 문체적 특징은 짧은 호흡의 단문에서 오는 긴장감에 있다. 그의 또 다른 소설 <마지막 눈>에서 이미 그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 바 있듯이, 극도로 절제된 묘사와 한숨 소리처럼 짧게 이어지는 대사는 마치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있다. 1인칭 주인공의 관점은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한정된 시각 속에 포착된 사람과 사물들을 묘사한다. 마치 독백처럼 들리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단속적인 내면을 드러내고, 그들의 심리는 주저하거나 더듬는 그들의 말을 통해 전달된다.
침묵의 변경에 서있는 그들의 언어는 의사전달의 도구라기보다는 물리적으로 응집된 하나의 사물처럼 보인다. 그 외로운 사물은 고립된 현실 속에서 침묵하며 살아가는 소년의 고독을 드러내는 가장 정확한 형식일 것이다. 그처럼, 문체에 대한 멩가렐리의 집념은 작품 곳곳에서 마치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형식을 예술적 모험의 대상으로 삼아, 오직 문체의 힘만으로 서있는 소설을 쓰겠다는 서구문학의 꿈과 그 오랜 전통을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다. 독자들은 카뮈 <이방인> 이후에 볼 수 없었던 소설 문장의 간결한 건조체의 매력을 <조용히 흐르는 초록빛 강>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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