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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어느 해 봄, 나는 혈액암에 걸렸다.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고독, 슬픔, 좌절 같은 쓸쓸한 단어들이었다. 감정을 피폐화시키는 방법을 배운 것도 그때였다. 병든 몸 사이사이로 계절이 몇 번 지나가는 동안 삶은 차츰 세상과 멀어져 갔고,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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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89-464-1442-1
발행일
2004-05-10
지은이
지미 (幾米, Jimmy Liao)
책정보
쪽 수 : 128쪽
가격
12,000

어느 해 봄, 나는 혈액암에 걸렸다.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나에게 남은 것은 고독, 슬픔, 좌절 같은 쓸쓸한 단어들이었다. 감정을 피폐화시키는 방법을 배운 것도 그때였다. 병든 몸 사이사이로 계절이 몇 번 지나가는 동안 삶은 차츰 세상과 멀어져 갔고,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끔 화실 햇살이 참새꽁지만큼 남을 무렵이 되면, 낯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지붕을 따라 창가로 내려와 야옹야옹 눈물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녀석의 턱을 쓰다듬거나, 발톱을 간질이며 같이 장난을 쳤다. 때로 녀석은 내가 그리고 있는 화판에 코를 묻고 반짝거리는 호기심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대개는 책상 위에 놓인 땅콩과자를 먹다가 돌아갔다. 고양이가 돌아간 밤이면 수수께끼 같은 빗방울들이 흩뿌렸다.

몇 년 후 다시 봄이 왔을 때, 나를 괴롭히던 혈액암은 흔적을 감추기 시작했다. 병이란 사랑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다가오고, 또 사라지는 것. 나는 푸른 물감과 커다란 붓을 들고, 이제는 창가로 찾아오지 않는 새끼 고양이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세월은 조금씩 흘러갔고, 훗날 낯선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구매가능 사이트 | 교보문고 | YES24 | 인터파크 | 알라딘
지미는 대만의 ‘상페’로 불리는 그림책 전문 작가이다. 1999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라는 도시의 사랑이야기를 출간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미의 감각적인 손길에 빠졌고, 그의 수공예적인 그림에 환호했다. 그러나 지미가 처음부터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다. 1996년 봄 그는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졌고, 혈액암 판정을 받았던 것. 그는 병마의 고통 속에서 자신만의 감수성을 발견했고, 그것을 그림으로 펼쳐내 대성공을 거둔다.

지미의 그림에서 어떤 이들은 아름다움을, 어떤 이들은 슬픔을 본다. 새로운 그림 형식에 감탄하기도 하고, 그림에서 보여지는 영혼의 슬픔에 동감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는 우리가 작고 하찮다고 생각해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마음의 우물에서 길어내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들려준다. 지미는 삶에 대한 따뜻한 눈길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마법 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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