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괴물> 시리즈로 국내 아동만화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프랑스 만화가 루이 트롱댕이 한국에 온다.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대사관 주최로 세종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한국 프랑스 도서 축제’에 참가하는 트롱댕은 부대행사로 열리는 27일 어린이 도서축제에서 작품전시와 팬 사인회 그리고 만화 그려주기 등의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트롱댕은 아동 만화가가 아니다. 백여 편에 달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성인독자들을 위한 것으로, 이번에 샘터출판사에서 출간한 <미스터 오>는 그의 독창적인 만화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어,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미스터 오>는 실패에 관한 30가지 유형을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했던 졸라맨을 연상케 하는 지극히 단순한 캐릭터, 미스터 오 는 길을 가로막는 절벽을 넘어가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서른 개의 에피소드에서 소개하는 서른 번의 시도는 모두가 실패로 끝난다. 능력이나 판단력이 모자라서, 운이나 재수가 없어서, 자만하거나 성급해서, 요행을 바라거나 아둔해서, 남을 너무 믿거나 남의 사정만 봐주다가 미스터 오는 건널 수 없는 절벽 앞에서 번번이 무릎을 꿇는다. 딱 한번 성공을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을 허비한 까닭에 절벽 건너편에 도달하자마자 늙고 쇠진해서 죽어버린다. 결국 그 시도도 실패로 끝난 셈이다. 우습고, 놀랍고, 불쌍하고, 얄미운 미스터 오의 기상천외한 실패담을 보면서 독자들은 박장대소하고 무릎을 탁!치고, 생각에 잠기거나 결의를 굳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요절복통, 엽기발랄, 좌충우돌, 혼비백산하는 이 만화에 유별난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대사가 한 마디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 오>는 챨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이 등장하는 한편의 무성영화를 연상케 하는 만화다. 게다가 주인공을 돕거나 막거나 속이거나 유인하면서 예상불허의 반전을 만들어내는 조연급 캐릭터들의 등장은 미스터 오의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독서의 재미와 깊이를 한껏 더해준다.
이 책을 읽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일주일,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 단조로운 60개의 컷으로 구성된 한 편의 에피소드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면 충분하니까, 30개의 에피소드를 완독하는 데에는 30분이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쌩뚱맞은’캐릭터가 그려내고 있는 드라마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하루, 일주일,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하여 성공보다는 실패가 훨씬 많은 우리 삶에서 또 한번의 실패가 기록된다고 해서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니고, 실패는 새로운 시도를 위한 준비에 불과한 것이며 그 수 많은 실패를 경험한 뒤에야 성공의 문턱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도 실패와 절망에 익숙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의 세태에서 <미스터 오>는 실패를 조롱하고 절망에 엿을 먹이는 한 편의 신나는 시트콤이다.
루이 트롱댕의 웹사이트 http://www.lewistrondheim.com를 방문하면 보다 상세한 자료를 볼 수 있다.
1964년, 프랑스 퐁텐블로에서 태어났다. ‘지루한’ 소년시절을 보내고 사촌을 따라 기술고등학교에 입학한 트롱댕은 공학에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전공을 바꾸어 문과 고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쥔다. 영화학교에 등록하지만 학교에서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긴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면서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때 그의 나이 25살. 복사기 한대와 연필 한 자루를 가지고 동작은 전혀 없이 오로지 대사만 바뀌는 인물이 등장하는 만화를 제작한 그는 자신이 창간한 잡지에 작품을 게재한다. 구독자는 여섯 명뿐. 하지만 12권의 잡지를 만든 트롱댕은 미니멀리즘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선과 색채가 보다 풍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5백여 쪽에 달하는 <라피노와 파타고니의 홍당무>이다.
1990년, 그는 다섯 명의 만화가들과 함께 출판사 아소시아시옹을 설립하여 ‘실험적이면서도 잘 읽히고 감각적인’ 만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만화가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던 트롱댕은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에 정착하고 1995년에 다르고 출판사에서 시리즈 <라피노의 멋진 모험>을 출간한다. 1994년에는 앙굴렘 페스티발에서 ‘알파르 꾸드 꾀르’ 상을 수상하고 1996년 몽트뢰이의 청소년 도서전에서 ‘토템’ 상을 받는다. 1997년, 트롱댕은 조안 스파르와 함께 <동종 제니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하고여 2004년까지 크리스토프 블랭, 마뉘 라르스네, 마장등이 합류하여 여러 편으로 구성된 <동종> 시리즈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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