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의 아름다운 앙상블!’
10字의 시와 100字의 산문이 만나 외롭고 지친 영혼에 전하는 행복 100선!
몇 마디의 말로, 몇 자의 글로 우리의 삶이 따뜻해지고 뿌듯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시적 언어는 삶의 희망이고 자산이었지요.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 불황의 장기화로 그 어느 때보다 올 겨울은 서민에게 몸도 마음도 시린 계절이 될 것 같습니다.
이즈음에 저자는 길을 잃고, 혹은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젊음과 허무로 뒤덮인 중장년의 공허한 가슴에 ‘시 한 줄’ 담아 다시금 행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아 단 10자만으로도 우리의 영혼은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10자가 말하지 않고 있는 것, 미처 말하지 못하는 것은 100자로 풀어쓴 산문이 좀더 살갑게 당신의 가슴에 위로를 전할 것입니다.
최재목 시인은 한때 일간 신문 제 1면에 ‘열 자로 읽는 세상’이란 기획 연재 코너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딱 10자만을 사용하여 시를 쓰고, 그 아래 100자 이내의 산문으로 해설을 붙이는 것. 해당 면을 기획할 즈음 그는 신문사 기자와 만나 한 줄로 표현하는 일본의 하이쿠보다도 더 짧게, 예컨대 열 자 정도로 더 멋지게 쓸 수도 있다고 확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책이 출간하게 된 발단입니다. 어찌 보면 우연한 일입니다. 물론 좋은 일들이나 발명, 발견이 대부분 우연에 기대어 나오는 것이라지만 최재목 시인은 어찌 보면 ‘무모한’ 그의 발언을 실천하고자 신경이 쓰였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어쩌면 열 자로 쓰는 시는 시인으로서 그의 사고(思考)의 한계에 대한 테스트이자 사고 속의 언어가 갖는 한계에 대한 실험이었던 것입니다. 그 뒤 그는 자신의 발언을 실천에 옮겨 딱 열 자의 시와 100자 안팎의 해설을 곁들여 신문에 발표했으며, 그때 준비한 글 일부는 인문서《크로스 오버 인문학》에 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시와 산문의 절묘한 앙상블로 시대를 노래한 그의 시편들은 모두 생각하고 느끼는 이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열 자는 더 이상 열 자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이 글을 만나 풀어진 마음을 다잡고 때론 긴장된 마음을 느긋하게 풀며, 좋은 화두를 얻어 삶의 진지하고도 따스한 부분을 스스로 열어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인연일 것입니다.
[저자의 말]
“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짧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닐 테지요. ‘열 자로 읽는 세상’에 대해 혹자는, 하필이면 왜 열 자인가? 차라리 글자 수가 더 적거나 많으면 안 되는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물음은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시는 응축과 은유입니다. 시는 거짓과 가짜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며, 일상의 무딤에 대해 그것을 늘 새롭고 깨어있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시는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또한 낯선 것들을 익숙하게 하는 힘을 가집니다.”
“시가 가진 눈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 즉 동심(童心)에 차 있습니다. 시에는, 왜 그래? 정말 그래? 하고 늘 끊임없이 묻는 정신이 있습니다. 이 점에서 시는 철학이요 시인은 철학자입니다. 시인은 쌓은 자이며 동시에 허무는 자, 가난한 자이며 동시에 부유한 자, 시인은 몸인 동시에 마음입니다. 시인은 과거인 동시에 미래이며, 희망을 갈구하는 동시에 절망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결코 말하지 않는다. 말하라, 그러나 말하지 말라!’고 하는 자라고….”
구매가능 사이트 |
교보문고 |
YES24 |
인터파크 |
알라딘 |
11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