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좌절이 있는 곳에 더 큰 은총이 있다
서구에서 ‘은총’은 흔히 절대적 주권자가 신민에게 베푸는 무조건적 사랑을 뜻한다. 사람들은 은총이 우리가 원하는 신성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해줄 거라 믿고, 은총을 받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개인화되고, 경쟁이 일상화된 서구 사회의 관점으로 볼 때 은총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치부된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실패는 곧 은총을 잃는 추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가시적인 성공과는 다르며, 사회적인 신분과도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닮고 싶어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를 다시 건설해가는 과정 속에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금 가족들과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고통 받는 것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더 높은 은총으로 나아가는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은총 속에 머무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실패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해
저자가 말하는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다가라 마을의 인간관계는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해타산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영혼이 서로를 끌어당김으로써 이루어지는 공적인 관계이다. 서구 사람들이 끊임없이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며 친목 모임, 동창회, 동호회, 사교그룹 등을 만드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서구의 공동체가 대부분 이성의 통제 하에서 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기 어려운 반면 다가라 공동체는 가슴으로 나누는 영혼 아래에서 구성원의 영적인 성장을 이끌어준다. 흔히 “가족들과 불화하면 다른 어떤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처럼 영혼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결혼도 낭만적 로맨스나 육체적인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만남이 두 사람을 보다 큰 어떤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자 조상과 문화,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하나로 합치는 의례이다. 이 책은 현대와 고대, 서구와 아프리카, 도시와 시골, 공동체 문화와 소비문화가 만나는 접점을 오가며 현대인이 겪게 되는 영혼의 위기들 - 시련, 다툼, 역경, 질병, 시험, 죽음 등에 대하여 소상히 밝혀나간다.
실컷 울어. 그리고 너의 슬픔을 말해 봐
“너의 감정을 남에게 보이지 마라. 그리고 강해지거라.” 서구의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때문에 아이들은 슬픔을 숨기고 죄책감이나, 두려움, 의기소침, 분노, 좌절, 공격 등의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슬픔이란 억누른다고, 감춘다고,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슬픔뿐만 아니라 분노와 고통, 괴로움 모두 그것을 표현할 때 치료된다. 다가라 마을에서는 이러한 영혼들의 갈등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의례를 행한다. 부부의 갈등을 해결해주는 ‘새로워짐 의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영혼을 분리하는 ‘분리 의례’ 등은 잠들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깨어나게 해주고, 우리를 균형과 조화의 길로 이끈다.
이 책의 저자 소본푸 소메가 사랑했던 남편과의 이혼하고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겪었던 그 시기, 격정의 불 속에서 태어난 불사조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혼 후 그녀에게 닥쳐온 절망과 좌절이 사실은 신의 더 큰 사랑이었음을,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시련과 실패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였음을, 이 책 《은총》은 부드럽게 일깨운다.
현재 그녀는 북미, 유럽 등지에서 다양한 강연과 저술을 통해 인류학 책 속에 잠들어 있던 아프리카의 지혜와 영적 전통을 현대인의 가슴속에 되살리는 작업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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