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다운 성실한 취재와 메모를 바탕으로 촘촘하게 엮은 문장은 독자를 그 시간 그 장소로 초대한다. 그가 추구하는 ‘사실’의 힘은 저자 특유의 서정과 맞물리며 더욱 힘을 발한다. 시의 운율과도 같은 리드미컬한 문장과 현장감이 만나 글맛을 더한다.
“내가 가 본 곳, 들은 것, 맛본 것, 부딪치고 느끼고, 읽은 것만으로 된 일인칭의 글이 얼기설기 꿰어졌습니다.”
그저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적었을 뿐이라고, 이를 얼기설기 꿰었을 뿐이라고 겸양하지만 촘촘하게 엮은 문장에는 허튼 틈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문화계의 숨은 이야기를 보고寶庫를 열 듯 열어 보이는 이런 장면,
“조 장관이 ‘사발’이라면 안 선생은 ‘종지’같다.
말소리는 조근조근, 얼굴은 생글생글, 발걸음은 사뿐사뿐,
툭 치면 넘어갈 듯.”(110쪽)
“그가 떡하니 모양새를 갖추고 북 앞에 앉으니
천생 고수였다. <흥보가> 한 자락이 쩌렁쩌렁,
북재비 하석의 손끝에서 둥 둥 딱 둥 신명 나게 어우러졌다.
국창과 주거니 받거니 추임새도 걸쭉했다.
역시 일고수이명창 一鼓手二名唱이요!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연신 땀을 훔치며 보는 이들의 어깨도 들먹였다.”(65쪽)
이런 글쓰기는 눅진한 문장에 어떻게 하면 차짐과 생동감을 더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자가 일필휘지로 쓱 그은 것이다. 더함과 보탬 없이 나눔과 뺌만으로 이루는 서가書家의 장인 같은 울림을 준다. 이것이 아마도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원동력이자 소양일 것이다.
경쾌한 유머와 위트, 그리고 문화력
진중함 속에는 또 경쾌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동독 출신 권투 선수 헨리 마르케와의 인연을 회상하는 「타임 투 세이 굿바이」나 반출이 엄격이 금지된 캐비아를 옛 소련군 장교로부터 얻는 과정을 유머스럽게 묘사한 「캐비아 연정」, 누드족들이 활보하는 영국 정원으로 일행을 이끌고 ‘신사유람(?)’했던 일화를 담은 이야기 등은 글을 읽은 즐거움이란 무엇인지, 즐거운 글을 읽은 재미란 또 무엇인지 새삼 일깨운다.
특히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때 음주가 엄격히 금지된 이슬람 국가에‘일용할 알코올’을 공수하는 「먹다, 마시다」 편은 마치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릴 넘치고, 그 결말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독자를 그 ‘사건(?)’의 공범으로 만드는 필력과 위트가 즐겁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이야기나 노숙자를 바라보는 마음, 젊은 시절 야학에서 만난 아이들을 향한 눈동자에는 또 그만큼의 따뜻함이 배어 있기도 하다. 순수한 소년의 마음이 아니면, 그 순수를 유지하고 있지 않으면 길어 올릴 수 없는 문장들이다.
문장의 경쾌함 뒤에는 또 자신이 보고 듣고 만나고 느낀 숱한 문화계 사건과 인물 들이 있다. 문학·미술·음악·서예·투각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전방위적인 관심, 또 그만큼의 폭과 깊이를 지닌 저자의 밝은 눈[明眼]은 일반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좇는다. 그가 찾아낸 우리 문화사의 여러 장면에는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표출할 수 있는 명백明白과 명료明瞭함이 녹아 있다.
인생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촘촘한 언어
“사람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빌리지 않고 홀로 서기가 쉽지 않다. 빌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다. 어머니의 자궁을 빌려 태어난다. 그리고 지혜도 지식도 다른 이들이 일구어 놓은 것을 빌려 자기의 것을 만들면서 발전해 가고 있다. 역사는 큰 텍스트가 된다.”(189쪽)
이어령은 자궁을 뜻하는 ‘womb’과 무덤을 뜻하는 ‘tomb’의 형태적 유사성에 주목하며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곧 죽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자 역시 시간을 우물의 깊이로 파악하며 이 안에서 삶을 길어 올린다. 이 긷는 행위는 ‘빌림[借]’이라는 또 다른 관찰로 이어진다. 바깥의 경치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경치를 빌리는 ‘차경’보다 몇 배 더 큰 ‘빌림’에 기대는 것은 아마도 사람일 것이라는 관조는 울림이 크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런 관조의 힘을 잘 보여 준다.
“시간의 우물에 두레박을 내렸습니다. 뽐내고 설레고 거침없고 벅차고 수줍고 휘날리던 때의 단물, 후회되고 가슴 저리고 부끄럽고 아팠던 센물, 어느새 섞였는지 단물곤물이 되었습니다. 길어 올린 물은…, 맹물이었습니다.”(저자의 말 중에서)
젊은 패기로 살았던 시대, 치열했던 삶이 연륜의 깊은 지혜로 이어지면 또 하나의 ‘우물’이 된다. 때로는 외딴 곳에 핀 들꽃처럼, 때로는 거친 사막에 홀로 선 나무처럼 굳건하게 버틴 뿌리에는 인생의 굽이굽이를 처연하게 헤쳐 나온 작가가 촘촘히 쌓아 올린 지혜의 샘이 흐른다. 저자의 글들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인생 장인으로서의 결실이다.
그의 시선은 다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현상에 대한 관찰로 이어지기도 하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관계라는 큰 고리 속에서 발견하는 생활의 기쁨, 사람과의 만남에서 얻는 보람, 작고 낮은 것들에서 찾는 크고 높은 희망들을 이야기하는 저자에게는 깊은 우물이 있다. 이 우물에 두레박을 하나 내려 차분히 길어 올리는 삶이 있다.
책 속으로
‘마침’이야말로 곧 ‘시작’이라는 주역의 종즉유시終即有始, 끝이 있으면 곧 시작이고 인생사 모두가 끝없이 무한하게 반복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한 점이 종착점이면서 동시에 출발점이라는 이치를 어렵지 않게 끄덕이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되돌이’가 품은 함의를 가슴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된 지 어언 꽤 되는데도, 또 맘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거나 어긋나지 않는다는 일흔 ‘종심 從心’을 훌쩍 넘었는데도, 미련과 욕심과 잡념에 매여 아직껏 담담하게 세월을 보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39쪽)
코로나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미물이다. 그 미물이 가진 자와 못 가진, 배운 사람과 못 배운, 동쪽과 서쪽, 피부색, 76억 마리 호모 사피엔스들의 그 완연한 다름들을 단번에 없앴다. 인류가 오래 염원했으되 이룰 수 없었던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그 평등은 혼란이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에 대해 해 왔던 깊거나 또는 얕은 성찰들을 코로나 덕에 되새김질하기 시작했다.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것 때문에 가뜩이나 생각들이 더 많아졌었는데,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더 진솔한 묵상을 하며 낮게 더 낮게 낮아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268쪽)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는 고요하다.
들어 보려 해도 놓치기 쉽다. 고요한 소리는 고요한 가운데서만 들린다. 맑은 소리가 나는 찬물 따르는 소리도, 더운 물 따를 때 나는 뭉근한 소리도 세월이 지나면 가릴 줄 알게 된다. 젊어서는 안 들리던 그 소리들이 나이테가 커져야 비로소 귀에 들어오는 것이다. 기쁨과 노여움, 즐거움과 슬픔마저 제풀에 바스라지고, 벼린 상처도 세월과 바람에 부대껴 두루뭉술해질 때가 돼야 사람들은 넉넉하게 품을 벌리며 살아온 소리를 들을 줄 안다. (325쪽)